효자의 반란! 남의 일인줄만 알았는데.....

고3병, 가정의 평화는 한순간에 깨지고.....끝인가 했더니 이별이 기다리더라

오서진 칼럼 | 기사입력 2011/09/30 [21:41]

효자의 반란! 남의 일인줄만 알았는데.....

고3병, 가정의 평화는 한순간에 깨지고.....끝인가 했더니 이별이 기다리더라

오서진 칼럼 | 입력 : 2011/09/30 [21:41]
                    <국제가족복지연구소 오서진 대표 칼럼>
     
▲ 황정민 주연의 뮤지컬 [웨딩싱어]의 한장면     © 뉴민주닷컴
 
지난 7~8월 각 장기요양시설들의 평가기간이라 필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신없이 강행군을 펼치며 강의하느라 피곤에 지친나머지 고3 수능생인 작은아들을 챙기지 못했었다.

게다가 문화공연 분야를 노인문제 혹은 소외계층의 사회복지로 연결해 풀어볼 요량으로 뮤지컬도 몇 번 보러 다녔었다.

늘 방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혼자 알아서 소리없이 공부를 해오던 작은아들은 고맙게도 필자가 고3 수능생의 엄마라는 사실을 잊고 살만큼 필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었다.

남들은 자녀들의 사춘기로 고민을 하고 수능반 가족들은 숨도 크게 못 쉬고 산다는데, 필자는 아주 부드럽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왔었다.

그러던 어느날, 필자에게도 고3 엄마들이 겪는다는 홍역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작은아들의 급작스런 변화로 인하여 필자의 집안은 급격한 빙하기에 직면했고 크고 작은 신경전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 추석명절 연휴기간이었다.
갑자기 예민해진 둘째아들이 식구들을 상대로 온갖 스트레스를 감당키 어려울만큼 부려댔다.
사사건건 매사가 불만이고 시비다.
처음엔 이유를 몰랐다.
조금 참아주다가 하도 화가나서 필자 역시 강압적인 태도를 취했다.

남들 다가는 학원을 안다니면서도 내신 1등급을 유지해 온 아들의 갑작스런 변화에 대해 미루어 짐작컨대, 처음엔 여유롭게 준비하던 수능인데 시험일이 가까워 올수록 심리적인 불안감이 생겨났던 모양이다.

처음엔 S대를 가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며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하고 여유를 부리더니, Y대 물리학과 입학사정관제에서 60:1이란 엄청난 경쟁률 앞에 좌절을 맛보고난 후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이 되었나보다.

엄마로서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이야 말로다 표현할 수 없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필자는 그래도 위풍당당하게 “좋은 대학보다는 좋은 인성을 갖춰라!”며 호기를 부렸었고, 아들은 슬며시 미소를 띠며 이 말을 받아들였었는데 더 이상 약발이 안 먹혔다.
결국 가족간 소통의 부재를 가져왔다.

Y대와 K대 물리학과 수시모집에 응시한 이후로는 상당히 예민하고 스스로도 제어가 안 된다고 호소할 만큼 날카로와 지면서 저항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날벼락을 갑자기 맞은 필자의 가정은 평화와 이별했다.

필자는 아이들에게 학원이나 기타 사교육을 시키는 대신 그 돈을 모았다가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보내면서 견문을 넓히도록 지도해왔고, 그것을 더 가치있게 여기며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었다.
성적보다는 인성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필자를 갑자기 외면하는 것 같다.

작은아들의 중학교때 영어성적은 10점대였다.
물리, 과학, 수학은 우수했는데 영어는 기가막힌 하위권이었다.
문득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뉴지랜드 옆 피지로 유학을 보내게 되었다.

지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유학간지 3개월 만에 초등부 영어에서 중등부를 떼고 고등부로 입문하더니 영어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하는 기염을 보였고 그쪽 기숙학원 관계자들도 놀라워 했었다.

유학간지 7개월 만에 외국인과의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었지만, 필자의 경제사정으로 귀국길에 올라야만 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 필자의 단란한 가족사진. 얼굴볼 시간도 없이 바쁜 큰아들만 빠졌다.  오른쪽 첫번째가 필자.    © 뉴민주닷컴
 
다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복학한 후, 2학기부터 성적을 올리더니 계속 내신 1등급을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늘 미소와 여유를 지니고 컴퓨터 게임대회도 나가 수상을 하는 등 수능공포와는 전혀 무관한 생활을 이어왔었다.

평범하기보다는 독특하면서도 긍정적인 아들을 대견하게 여기며 타인들에게 큰 소리로 자랑하고 다녔고, 가슴 가득 뿌듯함을 만끽하며 살아왔다.

주말이면 성당에서 학생회 활동도 하고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까지도 여유를 부려가며 걱정 말라던 아들!

그런 아들도 수능이 다가올수록 불안감과 스트레스의 무게가 나날이 커졌는지, 점점 예민하고 날카로워지고 짜증이 늘어났다.

그동안 우리의 삶은 타인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편안했고 정신적 여유를 누렸었다.
필자의 네 자녀들은 각각의 개성과 재능들이 정말 독특하다.
필자는 청소년 일탈의 문제가 우리 가족과는 무관한 이야기라며 살아왔는데, 고3 수험생의 급격한 변화로 올해 추석은 정말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
엄마를 가장 이해하고 사랑한다던 아들, 필자에게 가장 힘이 돼주던 아들이었기에 더힘들고 아팠다.

▲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켜진 빨간불 
그렇게도 돈독하던 모자관계에 추석날 전후로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날카로워진 아들 때문에 그동안 그 아이에게 가져왔던 편안함이 두려움으로 바뀌고 살얼음 위를 걷고 있다.
막내딸은 오빠의 심각한 히스테리에 시달리며 좌충우돌하면서도 혼자 툴툴 거릴 뿐, 오빠를 잘 이해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필자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정말 힘들면 성적에 맞게 낮춰서 대학을 선정하면 될텐데, 나름의 포부와 야망이 어찌나 강한지 오로지 SKY만 외쳐대면서 스스로와 가족들의 속을 볶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산에서는 산삼이 왕이고, 바다에서는 해삼이 왕이고, 집에서는 고삼이 왕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나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런데 가장 든든하게 믿고 의지했던 작은 아들의 반란에 속절없이 당하고는 심하게 앓게 되었다
예민한 탓에 필자는 사흘이나 잠을 못자며 억장이 무너지는 시간들을 경험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충격으로 지쳐가는 엄마의 모습이 측은했던지, 아들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안하게 공부를 하기 시작했지만, 예전과 달리 폭발의 빈도가 잦아졌다.

얼마전 필자는 온누리교회에서 진행하는 [아버지학교]를 탐방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곳에서 강연을 들은 후, 크게 느낀바가 있어서 작은 아들에게 “사랑한다”라는 어색한문자를 보냈다.

야간자율학습시간 이었을 텐데 아들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
"저두요~ 그리고 죄송해요! 사랑해요 엄마! "
그날 밤, 시간이 늦도록 작은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들은 정서적인 안정을 되찾은 듯 밝은 얼굴로 자신의 포부와 진학의 꿈을 들려줬다.

그동안 고3 수험생 엄마로서 너무도 방임했던 필자는 아들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정리하며 모든 고3 수험생들이 겪는 대한민국의 수능병폐에 대해 많은 감회를 느끼게 됐다.
작은 아들은 ‘엄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개념이 강한 아이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의 길이 공부라고 생각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타인을 위한 삶이 아닌 너를 위한 삶을 향해 가라고.....

하늘에 감사하고 자식들에게 고마운 것은, 편모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바르고 반듯하게 잘 성장해준 점이다.
자식의 꿈이 실현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엄마의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이땅의 고3 엄마들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가 있기를 기원드린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1등급 성적을 유지하면서도 사교육비가 들지 않았었고,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필자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아들의 성적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었기에 학교에도 찾아가지 않았었고 마음과 말로만 응원해 왔었다

평온했던 아들이 수능이 다가올수록 예민해지는 것을 보면서 ‘많은 수험생 가족들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필자가 겪는 것보다 더 큰 염려와 긴장감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고2였을 때, 일본으로 여행을 보냈더니 담임선생님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그러나 필자는 쉴 때는 쉬라며 일본 간사이에 사는 지인 집으로 열흘동안 여행을 보냈었다.
넓은 세상을 보며 어떤 꿈을 지니고 진로를 설계할 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인 적성과 무관하게 성적에 맞춰 진학해서 갈등과 휴학을 반복하는 그런 오류를 범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은 유쾌히 겨울여행을 다녀왔다. 막둥이 딸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방학때면 가까운 나라로, 멀리는 피지로 여행을 보냈었다.
설사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한 시간과 열정만큼은 엄마로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대견하게 생각하기에 작은 아들 녀석이 정말 자랑스럽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성장한 우리 아이들.
일탈하지 않고 잘 자라준 보배들에 감사한다.

[아버지학교]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버지’란 존재 의미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아이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됐다.
그동안 필자는 아이들에게 아버지 없이 살게 한 것에 대한 막연한 미안감을 항상 가지고 살아왔었다.
그저 막연한 미안함..... 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누리도록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죄책감.
그렇지만, 이제 부터는 달라지기로 했다.
막연히 미안해하기 보다는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역할을 엄마인 필자가 해주겠다고 말이다.

[아버지학교] 프로그램은 상상이상으로 훌륭했다.
아버지가 왜 아버지인지, 아버지의 역할과 아버지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자녀들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자녀를 위해 아버지로서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 등등 정말 유익한 내용들이 많았다.
이 땅의 모든 남자들이 [아버지학교]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실생활에서 이를 10%만 이라도 실천한다면, 아마도 이혼에 이르는 가정은 사라질 것 같다.
“비행청소년이 뭐야?” 하는 시대가 올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학교] 첫주 강의를 바탕으로 필자의 아버지를 돌이켜 생각해 봤다.
필자의 아버지는 지금 이 세상에 안계시지만, 아직도 필자의 무의식 속에 살아계시면서 필자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셨다.
필자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지도자이며, 고비마다 버팀목이 되고 계셨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하기로 한다.

다시 수능 얘기로 돌아와서, 필자보다 먼저 수험생 엄마 역할을 겪어본 선배들의 얘기를 전한다.
고3 1년 동안을 살엄음판 위에서 지내고 나니, 대학 입학 후 아들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했단다.
긴~ 시간 공부와 사투하다가 이제 겨우 억압에서 벗어났나 했더니, 이번에는 군대에 불려가더라는 것이다.
그 예쁜 머리 빡빡 깎고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니,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여 눈물이 주체할 수 없더란다.

▲ 수능이 끝이 아니다. 긴장감이 풀리고 나면 이별이 기다린다.     © 뉴민주닷컴
 
또 다른 선배 엄마는 “전쟁 같은 수능기 1년이 지나고 나면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 전쟁이 시작된다. 한 두 학기 지나고 군대 입대하고 나면 아들의 빈자리 때문에 공허하고 우울해져서 자꾸 울게 되더라”고 한다.
고3 수험생 본인뿐만 아니라 온가족에게 긴장감과 심각한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고3병과 곧이은 이별의 공허감.
언제쯤 우리사회는 이런 환경에서 자유로워 질수 있을까?

모든 부모들이 마찬가지겠지만 필자역시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일 까지 초긴장상태를 면하지 못할 것 같다.
다시한번 이 땅의 고3 수험생 엄마들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가 있기를 기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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