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

아버지가 주신 매운 교훈?.....겪어보니 장난 아니네!

오서진 칼럼 | 기사입력 2011/10/12 [19:31]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

아버지가 주신 매운 교훈?.....겪어보니 장난 아니네!

오서진 칼럼 | 입력 : 2011/10/12 [19:31]
<국제가족복지연구소 오서진 대표 칼럼>

지난 9월26일 음성군 감곡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세대간 소통’이란 특강과 무료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필자는 고향에 간 김에 선친 묘소에 들려 성묘를 했다.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다가 발을 삐끗해 엎어지면서 앞으로 굴렀다.
얼굴도 긁히고 입술도 상처가 낫지만, 그날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소외계층의 복지를 외치며 뛰어다녔었지만, 몸소 장애를 체험해보기 전까지는 장애우의 고통을 실감하지 못했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극심한 통증에 도저히 발을 디딜 수 없었고,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잘려진 듯한 통증이 덮쳐왔다.
집근처 정형외과를 찾아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오른쪽 발목 인대와 오른손의 인대가 손상되었고, 노화로 인해 퇴행성관절염이 왔다는 진단을 받았다.

필자는 6년 전에도 운동장에서 뛰다가 넘어지면서 무릎연골이 파열돼 수술을 받았었다.
2010년에는 산행중 발목이 삐끗하면서 굴러 허리 수술을 받은바 있다.
이번 부상도 단순한 경상에 그치지 않고 반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는 신세가 되었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과정에서 작년에 수술했던 허리통증이 재발 되고 목까지 아파졌다.

척추와 관절의 이상은 과거 몇 번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과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유로 계속 진행되어 온 결과물인 것 같다.
10년 사이에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5차례나 겪었고 그때마다 척추를 다쳤었다.
게다가 다섯 번의 출산을 하는 동안 단 한번도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했었다.
반 깁스를 한 상태로 목발을 짚은 채 대학원 수업을 다녔다.
인천선 송내역에서 온수역까지는 그럭저럭 다닐만했다.
군자동까지 가기 위해서는 온수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목발을 짚고 환승통로를 걸어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보통때(2~3분)에 비해 월등히 차이나게 오래 걸렸다.(장시간 목발을 짚고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처음이다.)

장애인용 전동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목발을 짚은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7호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도 정지되어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는데 식은땀이 줄줄 났다.
만약 휠체어를 탄 경우(역무원의 도움을 받겠지만), 이동시간과 기다림을 생각해보면서 이 땅에서 신체적 장애를 지닌 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간신히 7호선을 타고 어린이대공원 (세종대)역에 도착했다.
다행히 승강장에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지하역까지는 편하게 올라왔다.
그렇지만 지하역에서 지상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는 승강장에서 타고 온 엘리베이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필자가 가려는 방향과도 반대방향에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정문에 들어섰지만, 강의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정말 암담할 정도로 높기만 하다.
필자가 서있던 곳에서 대각선 방향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엘리베이터 앞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평상시 전철역에서 세종대 광개토관까지는 필자의 걸음으로 3분 거리.....
그렇지만 장애우의 입장에서 걸어본 길은 평소보다 10배의 시간이 걸리는 암벽등산 코스였다.
목발로 인한 겨드랑이와 손바닥의 통증은 깁스를 한 발목의 통증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조퇴를 하고 돌아와 끙끙 앓아누웠다.

▲ 평소 3분이면 넉넉했던 이동경로가 하루아침에 암벽등반 코스로 변해버렸다.     <네이버 지도 캡춰화면>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겪은 체험으로 마음까지 아팠다.
목발을 짚고 힘겹게 서있음에도 아무도 자리를 양보 해주지 않았다.
그냥 무심한 눈빛들이었다.
보기가 안됐던지 어느 연세 드신 어르신이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송구한 마음에 괜찮다고 웃으며 손사래를 쳐도 “곧 내릴 거다”며 자리를 내어 주셨다.
목발을 짚고 보행하면서 체험한 불편들 가운데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장애우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편의시설들을 갖춘 대중교통의 문제점이다.
눈으로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 생색내기 시설이 아닌가 싶을 만큼 불편하고 비합리적 이었다.

목발 운전 첫 날 잊지못할 고생을 겪고나니 도저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자신이 없었다.
부득이 비싼 휘발유를 때가며 중형차를 운전하고 가야만 했다.
기름값도 문제지만 도로마다 주차장이고 전쟁터라 제시간에 맞춰 가지도 못하고 결국 지각을 했다.
만약 필자가 휠체어를 타야하는 입장이었다면 상황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승강장~지하역~지상까지 엘리베이터가 바로 연결되지 않는 탓에 엘리베이터 환승을 위해 빙글빙글 돌아야 했을 것이고, 혹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을 만난다면 꼼짝 없이 갇히는 신세가 됐을 것이다.

장애우를 위한 편의시설을 관장하시는 공무원들께서도 직접 체험해 보셨으면 좋겠다.
과연 누구를 위한 편의시설인가를.....
필자는 이번 체험을 통해 생각의 변화를 겪었다.
평상시 전철에서 무심코 만났던 장애우들!
전철 안 한쪽에 그들의 자리가 따로 지정되어 있으니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고, ‘얼마나 불편할까?’는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누구나 사고 혹은 후천적 이유로 장애를 겪을 수 있을 텐데, 필자는 남의 일처럼 생각해왔던 것을 반성하게 됐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을 살면서 어리석은 자만에 빠져 있었던 필자야말로 교만한 지적장애를 겪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는 필자의 이런 지적장애를 고쳐주려고 성묘 온 막내 딸을 냅다 굴리셨나?보다.
ㅎㅎㅎ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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