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추석, 나의 명절.....

외로운 명절.....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구나

오서진 칼럼 | 기사입력 2011/09/10 [21:53]

어머니의 추석, 나의 명절.....

외로운 명절.....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구나

오서진 칼럼 | 입력 : 2011/09/10 [21:53]
<국제가족복지연구소 오서진 대표 칼럼>

▲ 온 가족이 모여 명절준비로 시끌벅적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자료출처:네이버>  
어린 시절, 명절이 다가오면 괜시리 설레이고 들떠서 몇 일전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어머니는 방앗간에 가셔서 불린 쌀을 빻아 오시고, 이내 송편 만들 준비를 하시느라 분주히 부엌을 오가셨다.
송편 속은 왜 그리도 달콤한지......
만드는 척하고 몰래 주어먹다 들켜서 혼나던 그 시절.
솔잎을 깔아 송편을 얹고 쪄낸 그 맛!
대가족 이다보니 사흘 전부터 음식준비를 하느라 집안 곳곳이 정신없었다.

짚으로 놋쇠 그릇 닦아놓고, 제기도 꺼내놓고, 푸줏간집 아주머니가 함지박에 고기 담아 팔러 오시면 툇마루 끝에서 고기를 내려다보며 흥정하시던 무서운 호랑이 할머니의 위엄!
1890년대에 태어나신 그 할머니는 고향에서는 알아주던 무서운 마님이셨다.
어린 시절 머슴이 많았던 우리 집은 삼삼오오 부엌으로 많이도 모여 들었다.
무서운 할머니 몰래 먹을 것을 챙겨주시던 우리 어머니.....
명절이 되면 온 집안이 북적대고 우물가로 부엌으로 대청마루로..... 각 방마다 손님과 일하는 머슴들로 가득했었다.
어린마음에 그렇게 손님이 많은 명절이 참 좋았다.
이제 쉰을 넘기며 고향이란 울타리가 때로는 높게 느껴졌던 때도 있었지만, 나이가 더해지면서 고향의 향수를 조금씩 진하게 느끼고 있다.

노인복지학을 공부하다보니 노인들에 대한 일상과 지식은 물론, 옛 어른들의 지혜와 경험의 토대에서 얻어지는 슬기를 터득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 고즈넉한 시골 성당의 전경    <자료출처:네이버>  
나는 선친께서 잠들어 계신 천주교 공원묘지를 무척 좋아한다.
많은 이들의 영혼이 함께 안식하면서 늘 반겨주는 듯한 푸른 봉분들.....
선친께서는 선산을 마다하시고 천주교 공원묘지를 스스로 선택하셨다.
아마 사후에도 주님의 은총을 받고 싶은, 신에 대한 갈망 내지는 절박함 이었을 듯싶다.

20년 전 아버지께서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실 때, 스스로 십자가를 품에 안으시며 주님을 받아들이셨다.
짧은 인간세상에 대한 회한을 안은 채...
그렇게 아버지께서 떠나신 후, 그 넋의 흔적을 찾아 배회하던 나의 영혼.....
이제는 나 역시 세상살이의 비좁음과 허탈함을 깨달아, 서서히 소풍 나왔던 이 세상을 되돌아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 고향 동네 선후배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맨 앞줄 가운데 흰모자를 쓴  필자)
고향의 재경 면민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나 자신부터 선후배들에 이르기까지 노화가 진행되면서 옛 향수의 추억 속으로 자주 빠져들면서 어린시절의 기억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모임에 나갈 때마다 나이 오십 줄을 넘긴 사람들이 서로를 반기며 어릴적 추억을 함께 되새김질 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어느새 한껏 늙어버린 고향선배들의 얼굴에서 그 옛날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서 뛰놀던 개구쟁이 눈빛들이 읽혀진다.
그들과 나의 세상이 오래도록 아름답기를 기대해본다.

▲ 필자가 살던 집은 개발바람덕에 지금은 사라졌지만, 무척 큰 집이었다.   <자료출처:네이버>
필자의 학창시절에 유행하던 노랫말을 흥얼대다보면 감성은 이미 소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여섯 소녀였던 나는 책을 끼고 책속에 파묻혀 문학소녀의 꿈을 키웠었다.
사람들은 나보고 ‘참 맑은 사람이다’ 라는 표현들을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대답하는 말이 똑같다.
"철이 아직 덜 들어서 그래요~"
철이 덜 들었다는 것은 아직 소녀 같다는 의미를 담은 응수방법이다. ^^


가을입구에서 선선한 빗줄기가 내린다.
흙내음이 향기롭다.
나는 흙을 무척 좋아한다.
문학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흙은 생명의 근원이며 모체이고, 우주이기 때문이다.
포장된 콘크리트 숲은 단정하고 깔끔할 수는 있으나, 순수의 모습이 인공적인 돌로 덮어씌워졌기 때문에 숨이 막힌다.

인간에게도 콘크리트 숲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많다.
말 그대로 콘크리트 숲 같은 사람...
인간적인 향이 없다.
나는 자연주의자여서 나의 모체인 흙으로 돌아갈 마음을 품고 산다.
흙은 나의 어머니이자 고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흙이 겨우내 움추렸던 온몸을 털고 생명의 기지개를 활짝 켜면, 꽃망울이 고개를 치켜들며 화려한 부활을 예고한다.

▲ 주말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교통체증은 흡사 개미 행렬을 연상시킨다. <자료출처:네이버>    
흙과 사람.
성경대로라면 사람은 흙으로 빚어졌다. 흙과 사람은 동일한 하나의 물질이다.
자연속에서 흙을 벗 삼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평안해 보여 부럽게 느껴진다.
도시 한 가운데 콘크리트 더미에서 발버둥 치며 사는 현대인들이 주말만 되면 막히는 도로에도 아랑곳없이 교외로 외곽으로 떠나는 모습은, 흡사 쑤셔놓은 개미굴을 연상시키곤 한다.
그 이유는 바로 흙내음 나는 자연이 고파서일 것이리라.
나는 흙같이 자연친화적인 사람이 좋다.
포장되지 않고 덧 씌워지지 않은 사람, 황토 흙처럼 부드럽거나 혹은 마사토처럼 푸석푸석한 사람.

기억 속 어린 시절의 어머니 모습을 그리며 쓰던 시가 있다.
이미 고인이 되셨고, 지금까지 생존해 계셨다면 아흔이 훨씬 넘었을 분들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끔씩 글로 써보곤 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나는 홀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고, 과거에 내가 살던 집 넓은 앞마당을 어지러이 돌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댄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이후, 명절이면 나는 늘 혼자다.
마땅히 갈 곳도, 찾는 이도 없는 혼자.
그래서 명절이 되면 옛 향수병이 도지곤 한다. 아주 심하게.

▲ 검게 그을린 부뚜막은 어머니의 숨결로 가득하다. <자료출처:네이버>  
“엄마!”
눈 감은 나는 어느새 엄마의 모습을 찾아 고향집 이곳저곳을 헤짚고 있다.
내 어머니의 눕던 자리는 하얀 잿더미 같은 자리!
내 어머니의 일터는 검게 그을린 부뚜막이었고 그곳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탔었다.

두레박으로 퍼 올린 빙수 같은 우물로 가마솥을 배불리 먹이고 나면, 어느새 어머니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고, 너풀너풀 헤진 행주치마 자락이 어머니의 이마를 훔치곤 했다.
부엌 일이 끝나면 자정가까이 새벽이 맞도록 할머니 한복을 지으며 숯불로 인두질을 하시던 내 어머니.....
어머니 곁 자락엔 비릿한 반찬 내음이 가득하고, 어머니의 손바닥이 스치면 수세미가 볼을 핥은 듯 순간의 아픔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푸근한 향수 속에 머물던 어머니의 영상은 사기그릇 깨진 듯 날카로운 독설가로 변하셨고, 노쇠해진 정신력 때문인지 섭섭한 말씀만을 골라 흩뿌리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의 빈자리에서 존재감을 깨달은 나는 그녀의 무덤가에서 가끔 노래를 부르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 명절이 찾아왔다.
검게 그을린 부뚜막 한 끝에서 저린 허리를 홀로 두들기시던 어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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