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에 슬퍼하나 현실에는 무덤덤"

<서지홍 칼럼>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가"

서지홍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0/03/15 [00:34]

"먼나라에 슬퍼하나 현실에는 무덤덤"

<서지홍 칼럼>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가"

서지홍 칼럼니스트 | 입력 : 2010/03/15 [00:34]
영화배우 차인표는 에티오피아에 다녀와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무엇이 그리도 좋으냐? 배고픈 것이 좋으냐. 아픈 것이 좋으냐. 목마른 것이 좋으냐. 매 맞는 것이 좋으냐. 나의 손이 무엇이 길래, 내가 손을 잡으면 너는 세게 잡느냐. 나의 눈이 무엇이 길래 내 눈과 마주칠 때마다 너는 웃어 주느냐. 난 너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너도 나에게 사랑한다 말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나는 따뜻한 물과 맛있는 음식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너는 어두움과 모래와 갈증만 있는 사막에 남는 구나. 너를 사랑한다면서, 나는 너를 매일 버리는 구나." 참으로 애절한 사연을 그대로 표현했다.

그의 부인 신애라 씨는 또 이런 글을 섰다. "맨발로 흙길을 걸으며 나를 졸졸 따라오는 두 소녀를 만났습니다. 그날 아이들은 온종일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운동화 신은 내발이 가시에 찔리자, 아이들은 맨발로 그 가시들을 치워주었습니다. 네, 그렇게 저의 자식은 스물한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는 그렇게 글을 섰다.

 
▲ 영화배우 차인표는 에티오피아에 다녀와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무엇이 그리도 좋으냐? 배고픈 것이 좋으냐. 아픈 것이 좋으냐. 목마른 것이 좋으냐. 매 맞는 것이 좋으냐.

 
우리는 실제의 현장에서 직접 체험을 하는 것보다 그럴듯한 가상의 세상을 더 많이 체험하고 산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TV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고통스러워 하지만, 막상 이웃의 죽음에는 무덤덤하다. 근래 아이티와 칠레, 그리고 타이완에서 지진과 해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다는 뉴스를 들어도,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에서 홀로 사는 노인이 운명한지 몇 주가 지났다는 소식도,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당장 바늘에 찔린 내 손가락이 더 아픈 것이라고, 편안한 소파에 비스틈이 누워 감성을 자극하는 TV속의 세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TV 속의 세상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저 가상적인 인간들의 세상이며 TV를 보고 있는 나도 그 순간은 가상적인 인간이 된다.

이런 세상에는 깨달음이 없다. 깨달음은 나 라는 존재가 주체로서 녹아나야 하며 너 라는 대상이 뜨겁게 내 속으로 들어와 함께 소통을 해야 한다. 그렇게 만나는 그 자리에 마음이 숨 쉰다. 사물 자체는 깨끗함도 불결함도 없고 다만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금 너무도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옆 사람의 처지를 살펴 볼 여유가 없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있는 곳이 중심이 되어 나름대로 자기 자리에서 깊이 있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상호의존하게 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연결된 고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수많게 들어선 아파트 숲이나 다세대 주택에서 옆집이나 앞집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관심도 없고 이웃이 아파트 고층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어도 잠시 잠간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고 만다. 그래서 함께한다는 것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이웃들의 다정한 눈빛도 보지 못한 채 말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자살을 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면서, 수십 평, 수백 평의 아파트를 저 세상을 가져갈 것도 아니면서, 이웃의 죽음과는 전혀 관계없이 오늘을 사는 우리 이웃들이기에 더욱 슬프다.

동계 올림픽에 열광하고, 월드컵 축구에 열광하고, 김연아에 열광하고, 장동건의 결혼에 관심이 많아도 이웃 노인의 죽음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인심이 너무 슬프다. 어떤 젊은이는 동계 올림픽이 끝나 살아갈 재미가 없다고 한다. 또 어떤 재미를 찾으러 이번에는 월드컵에 올인 하려고 한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스포츠에 매달려 삶의 의욕마저 잃고 있는가. 물론 국위선양과 짜릿한 경쟁의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도 재미있고 보람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우한 이웃을 돕는 다던가, 소외된 곳을 찾아 봉사하는 것이 알고 보면 얼마나 재미있고 보람된 일이겠는가. 그러나 나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보다 보람찬 일이 없다고 한다.

차인표, 신애라 부부의 에티오피아의 불우한 어린이를 도우면서 얻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어찌하여 그들은 열대 아프리카의 어린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아들, 딸로 삼아 후원하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삶의 보람을 찾아 저 먼 아프리카 땅까지 사랑의 손길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TV속 드라마 보다 더욱 실감나게 흘릴 눈물이 아니겠는가. <대구동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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