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수 칼럼]신춘문예에 대한 소고

문인육성에 공헌을 하는 신춘문예는 1925년에 실시됐다

이연주 기자 | 기사입력 2016/11/22 [18:36]

[정성수 칼럼]신춘문예에 대한 소고

문인육성에 공헌을 하는 신춘문예는 1925년에 실시됐다

이연주 기자 | 입력 : 2016/11/22 [18:36]
▲전주에 거주하고 있는 시인 정성수 의 모습                                                                        © 뉴민주신문

신춘문예에 대한 소고

신춘(新春)은 새봄을 뜻하며 문예(文藝)는 글재주를 말한다. 신춘문예(新春文藝)는 신문사 또는 잡지사가 연말에 시, 수필 등 문학작품을 공모하여 권위 있는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한다. 그 중 우수한 작품 한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여 신년 벽두에 발표하고 상금을 주는 일종의 문예작품 선발 행사다. 
 
문인육성에 공헌을 하는 신춘문예는 1925년에 동아일보를 필두로 하여 1928년 ‘조선일보’ 에서 실시하였다. 그 후로 일제 말기와 8·15광복과 6 ·25전쟁으로 몇 해 동안 중단되었다가 1954년에 창간된 ‘한국일보’에서 신춘문예 제도를 창설하였다. 뒤를 이어 ‘경향신문’과 ‘중앙일보’에서 개최함으로서 오늘 날에 이르렀다. 문단 등용문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신춘문예는 최근에는 여러 지방 신문은 물론 문예지에서도 앞 다투어 실시하고 있다. 많은 문인들이 시, 수필, 소설, 평론, 희곡, 동화 등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여 활동하고 있어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신춘문예’가 갖는 비중은 대단하다. 그것은 신춘문예 공모가 시작되면 엄청난 숫자의 원고가 투고되기 때문이다. 까닭은 신문사라고 하는 권위와 이에 따르는 전파력에 있다. 다른 하나는 상금이라는 프리미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춘문예 공모’ 시즌이 되면 수많은 문학도들이 몸살을 앓고, 한 해의 작품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당선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신문사들 역시 풍작을 위해 경쟁을 한다. 

신춘문예의 공모에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응모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로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은 나이와 성별이다. 요즘은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함부로 알려주지도 묻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문학에는 정년도 구조 조정도 명퇴도 없다. 주민등록번호 요구는 늦은 나이에 문학 활동을 하는 노년층 문학인들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다. 이런 일은 백세시대에도 걸맞지 않는다.

어떤 의도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작품성을 보고 당선자를 가리면 그만이다. 부득이 주민등록번호를 알아야 할 경우라면 당선자가 결정이 나면 그때 요구해도 늦지 않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응모 모집 요강에 나이의 범위와 남녀별 등 자격요건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신문사나 주최 측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상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라든가 아니면 막판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작품이 나왔을 경우 기왕이면 장래가 창창한 연소자를 당선시키겠다는 의도일 수 있다.  

다음에는 등단 문제다. 신춘문예 당선자가 결정되면 당선을 통보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신상에 대하여 꼬치꼬치 캐묻는다. 첫 번째가 등단유무다. 등단을 했다고 하면 실격이라고 한다. 기성문인은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모 신문에 ‘2016년 00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인이 기성 문인임이 밝혀져 당선을 취소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사고를 봤다. 참으로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요즘 등단을 하지 않는 문인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을 비롯해서 동사무소 또는 노인복지회관 등에서 문학 공부를 하면 등단은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함께 문학공부를 하는 문우와 경쟁적인 생각과 강사들의 권장에 너도 나도 등단을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등단 한 사람들이다. 신춘문예에 당선자들의 프로필을 봐도 수년 또는 수십 년을 문학공부를 한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수상경력이 화려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실제 미등단자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미등단자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고 하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원고와 경비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도 출간은 가능하다. 문학성이나 작품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책 한권 출간하지 않으면 문인으로 대접도 못 받는 세상이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려면 적어도 책 몇 권은 출간해야 할 정도다. 그 만큼 작품을 많이 쓰고 문학 공부를 많이 해야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말과 같다. 

수상도 그렇다. 같은 부문의 타 신문사에서 수상한 사람은 기성문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작품 자체를 응모할 수 없다.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신춘문예는 ‘새봄을 뜻하는 글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작품성만 본다는 데 의의를 둔다면 어떤 수상을 했던 간에 상관이 없다.
  끝으로 시부분 공모에 대해서 사족을 붙인다. 요즘 신춘문예의 시 당선작은 난해해서 도통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안 간다. 평론가나 시의 고수들만이 알 수 있는 시는 죽은 시다. 시를 읽고 감동을 받을 때 시의 사명을 다 한다고 할 수 있다. 감동도 없고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시들이 당선이 되고 그 시인이 시집을 출간하면 어떤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는가 반문한다. 물론 실험적이고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작품과 차세대를 끌고 갈 유능한 시인을 발굴한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신문 헤드라인만 조합해 놓은 것 같은 해독 불가한 ‘시’야만이 당선된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것이 문제다.

신춘문예는 수많은 문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문학행사다. 디지털이 판을 치는 세상이 온다고 할지라도 아날로그의 원천인 문학은 많은 사람들의 위로이자 위안이다. 문학의 꽃이 피고 그 꽃을 바라보는 이들이 많은 세상은 향기로운 세상이자 살만한 세상이다. 작가 등용문인 신춘문예는 말 그대로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오르지 작품성만으로 선정하여 희망의 신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인 정성수   ©뉴민주신문

• 서울신문으로 문단에 나옴
• 저서 : 시집 공든 탑, 동시집 첫꽃, 동화 폐암 걸린 호랑이 외 다수
• 수상 : 세종문화상. 소월시문학대상. 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
• 현) 울산광역매일 ‘정성수의 시와 맑은 글’ 외 연재 중
• 현) 향촌문학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정회원
   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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