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학생땐 박정희 지금은 그 딸에게 희생 “참을 수 없었다”

‘의혈 중앙’ 한강 다시 건넜다.. 백남기씨 후배들 “선배 따라서”

박귀성 기자 | 기사입력 2015/11/21 [22:32]

백남기, 학생땐 박정희 지금은 그 딸에게 희생 “참을 수 없었다”

‘의혈 중앙’ 한강 다시 건넜다.. 백남기씨 후배들 “선배 따라서”

박귀성 기자 | 입력 : 2015/11/21 [22:32]

직사물대포에 의식불명 중대 총학 출신 백남기씨 쾌유기원 행진

‘의혈 중앙’ 한강 다시 건넜다.. 백남기씨 후배들 “선배 따라서”

중대 학생과 동문, 농민 200여 명 중대⟶종각⟶ 서울대병원 행진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대규모 도심 집회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의 캡사이신 물대포를 직사로 맞아 광화문 네거리 근처 현장에서 쓰러져 의식불명에 이른 백남기씨가 중앙대학교 총학생회 출신으로 알려진 가운데 후배들이 21일 농민 백남기씨의 쾌유를 기원하기 위해 도보행진에 나섰다. 

이날 백남기씨 쾌유기원 도보 행진은 중앙대 서울캠퍼스 정문에 집결하여 간단한 출정식을 갖고 흑석역을 거쳐 한강대교를 건너 백남기씨가 쓰러진 장소인 보신각에서 폭력경찰을 규탄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 백남기씨가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까지 인도를 따라 진행됐다. 

중앙대 동문들과 재학생들이 참가한 이번 행진에는 70,80학번 세대가 주류를 이뤘고,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합류했다.

중앙대학교 대자보를 통해 이번 ‘백남기 동문 쾌유기원 거리행진’을 제안한 신지영씨(사회학과 13학번)는 이날 행진에 앞선 출정식에서 “민중총궐기는 저도 참여했고 그 날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 분이 다름 아닌 우리 선배님이셨다”며 “이곳이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가? 이제 우리 후배들이 함께 행동하자”고 호소했다. 

신지영씨는 “우리 동문이신 백남기 선배님께서 농민의 목소리를 전하려고 오셨다가 경찰의 무자비한 물대포에 의해 의식불명에 이르렀다”며 “물대포는 폭력 저지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입을 막으려는 국가의 폭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지영씨는 또한 “농민의 목소리를 전하러 온 농민을 물대포로 살인 진압하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며 “우리 학교 68학번 선배인 백남기 선배님은 젊어서 민주화를 위해 싸우시다 투옥되셨고 2015년엔 또다시 국가폭력에 맞서다 쓰러지셨다. 추운 날씨지만 선배님의 쾌유를 위해 함께 힘차게 행진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행진은 인도를 따라 진행됐으며, 행진 대오 앞열과 중간 중간 깃발을 든 기수들과 참여자들은 ‘살인폭력진압 추방’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이명박 구속, 박근혜 퇴진’ 등이 적힌 팻말을 몸에 붙이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특히 같은 내용의 글귀와 구호가 적힌 현수막과 백남기씨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장면 또는 호송되는 장면을 담은 사진 피켓 등은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중앙대 동문들은 연대 학번 별로 각기 다른 ‘중앙대학교 점퍼’를 입고 행진했고, 전국농민회 농민들은 구호를 써넣은 쌀포대를 입고 걸었다. 

중앙대 민주동문회에 따르면 백남기씨는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68학번으로 1980년 재건총학 1기 부회장을 엮임했고 그 해 5월 중앙대학교 학생들이 흑석동 지금의 서울캠퍼스에서 한강대교를 건너 서울역까지 행진하는 ‘중앙대 4000인 한강도하 투쟁’을 주도했다. 이날 행진은 당시 백남기씨의 정신을 후배들이 계승한다는 의미로 계획됐으며 당시 백남기씨가 걸었던 경로 그대로 행진이 진행됐다.

백남기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장군의 권총에 피살되면서 전국에 내려진 계엄령으로 계엄군이 전국 치안을 장악해 민중탄압의 서슬이 시퍼럴 당시 한강도하 투쟁을 감행했고, 이틀 뒤 계엄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같은 해 7월 학교로부터 3차 제적을 당했다. 

백남기씨는 계엄사의 고문수사 끝에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군사법원으로 넘겨져 군사법정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1981년 3월 특사로 풀려난 뒤 낙향해 농업에 종사해왔다.

중앙대 민주동문회 홍선범(정외과 85학번)씨는 “수십 년 전 민주화를 외쳤던 자리에 다시 오게 돼 감개무량하면서도 서글프다”며 “백남기 선배님의 살아오신 길을 듣고 이곳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전기환 전농 부의장은 쌀포대를 조끼처럼 걸치고 나와 “이 정권은 살려달라는 국민들의 말을 듣기 싫으면 듣지 말 것이지 왜 죽이려고 까지 하는가”라며 “반드시 폭력경찰을 처벌하고 대통령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결의를 다쳤다. 

허영구 좌파노동자회 대표(중앙대 77학번)는 “물대포에 다친 분이 학교 선배란 걸 뉴스를 보고 알았다. 안타까워 하고 있었는데 페이스북에 오늘 행진이 열린다는 걸 보고 나왔다. 우리 학교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잡혀간 분이 백남기 선배님”이라고 과거를 회고했다. 

허영구 대표는 이어 이날 ‘의혈’이라는 깃발을 보며 “‘의혈 중앙’은 4·19때부터 붙은 명칭인데, ‘의에 죽고 참에 산다’는 교훈 때문에 의혈 중앙이 됐다. 80년처럼 중앙대생 수천명이 한강대교를 건널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민주주의 후퇴 상황, 재벌 중심의 경제로 일자리 나누기가 안 되는 상황 때문에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중앙대 83학번 동문 백모(중랑구 52세)씨는 “우리 선배들은 박정희 독재정권과 싸웠고 우린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에 맞서 싸웠다”며 “당시 체포와 고문이 다반사였지만, 우리는 굽히지 않았고 끝내 6.29민주화 선언을 이끌어냈다”고 회고했다. 

백모 씨는 이어 “민주화가 지금처럼 이렇게 무기력할 수 없고, 민주화가 이렇게 훼손될 수는 없다”며 “박정희가 백남기 선배님을 투옥시켜 학교에서 내몰았다면, 그의 딸 박근혜는 백남기 선배님을 죽이려 하고 있다”고 격분했다. 

한편, 이날 정오에 중앙대학교 정문에 집결한 행진 대오는 이곳에서 간단한 출정식을 갖고 오후 12시 25분 중앙대 정문을 출발, 한강대교를 건너 오후 2시 20분께 서울역 앞을 거쳐 오후 3시 20분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쓰러진 종각역 앞에서 짧은 규탄집회를 열고 간단히 휴식을 취했다. 체력을 보충한 행진대오는 연건동 서울대병원 목표지점에 도착 백남기씨의 쾌유를 기원하고 이날 행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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