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여론조사 논란, 조사기관에 불똥

총체적 불신감 팽배 속, 대선 예비주자들 유불리 따지며 대립

윤종희 | 기사입력 2007/09/07 [18:59]

정치권 여론조사 논란, 조사기관에 불똥

총체적 불신감 팽배 속, 대선 예비주자들 유불리 따지며 대립

윤종희 | 입력 : 2007/09/07 [18:59]
 
▲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여론조사로 결정나자, 여론조사 반영을 놓고 정치권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 뉴시스
정치권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온통 여론조사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7일 현재 통합민주신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모두 여론조사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들 정당들 대부분이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 방법의 일부로 여론조사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정작 한나라당 경선 결과는 그 신빙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말았다. 여론조사 결과가 직접 투표장을 찾아가 한표를 행사한 일반 선거인단의 표심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다.

아울러 한나라당 경선 과정 내내 주요 여론조사 기관들이 줄기차게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들은 이명박 후보 압승을 예상했지만 실제 결과는 박근혜 전 대표와 1.5% 차이에 불과했던 점도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 통합민주신당은 여론조사 문제로 자칫 경선판이 깨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돌 정도다.

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예비 후보들은 여론조사를 놓고 찬성과 반대로 극명하게 나뉘어 팽팽히 대립하는 상황이다. 여론조사 반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선 당락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손학규 후보는 줄곧 범여권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려왔다. 또, 한나라당을 탈당해 통합민주신당에 새로 합류한 만큼 당내 자체 기반이 부족하다. 때문에 당연히 여론조사를 고수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만약 여론조사를 반영하지 않을 경우 경선에서 고배를 마실 수 있다는 관측마저 흘러나온다.

유시민 후보도 여론조사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유 후보가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내 경선이 여전히 조직선거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 후보는 특히 '정동영 후보가 조직선거를 하고있다'며 불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여기에 소위 '유빠'라는 유 후보의 열렬 지지자들과 유 후보 특유의 '입심'이 더해질 경우 여론몰이를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더해진다.

반면 정동영 후보는 여론조사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 후보는 이번 통합민주신당 경선에는 만 19세 이상의 국민이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데 굳이 신뢰하기 어려운 여론조사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에는 여론조사를 반영하지 않을 경우 당 조직에서 앞선 자신이 크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포함돼있다.

이해찬 후보도 여론조사가 필요없다는 쪽이다. 이 후보는 세계 어디에도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에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경우가 없다고 지적한다. 또 표본수가 적은 여론조사는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이 후보는 그러면서 차라리 한명숙 후보가 제안한 '핸드폰 투표'를 도입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한명숙 후보는 경선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여론조사보다는 '핸드폰'으로 간단히 투표할 수 있도록 하면된다고 제안했다. 한 후보는 이날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전국적으로 동원 투표를 한다면 부작용이 굉장히 클 것"이라며 "선거인단의 투표율이 저조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모바일 투표야말로 국민 관심과 참여를 이끌 획기적 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인단) 동원을 조직적으로 할 수 있는 후보가 이기게 되면 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 민주당도 여론조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조순형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들 가운데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물론, 범여권 후보를 통틀어서도 2, 3위를 오가며 국민 후보로서의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때문에 조 후보는 당연히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높일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신국환 후보 등 나머지 후보들은 한나라당의 사례를 들면서 '여론조사 삭제'를 주장했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지난달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론조사 15% 반영을 결정했다. 때문에 경선 이후에도 이를 두고 '조순형 편들기'라면 이래저래 분란이 일 가능성이 커졌다.

#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여론조사와 실제 진행되고 있는 경선결과가 불일치하는 모습이다.

심상정 후보는 권영길, 노회찬 후보에 비해 여론조사에서 상당히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6일 현재 경선전에서 심 후보는 4919표(24.2%)로 노 후보의 4824표(23.8%) 보다 95표 앞서 당당히 2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2월 진보정치연구소가 경선 출마가 예상되는 3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원 여론조사에서는 심 후보는 불과 7%를 얻었다. 때문에 민노당 경선의 최대 승자는 심 후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심 후보의 2위 입성은 여론조사 신뢰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어느 시점에서의 여론조사 결과가 시간이 지나면서 큰 폭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가 크다.

#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여론조사로 법적 소송에까지 휘말린 상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모임 '박사모'는 5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박관용 경선관리위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박사모는 "강 대표와 박 위원장이 8월20일 한나라당 경선 결과와 관련해 여론조사에 관한 사항을 발표하면서 당연히 함께 밝혀야 할 피조사자의 선정방법, 표본의 크기, 응답률 등을 공표하지 않았다"며 "이는 공직선거법 108조 4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직선거법 108조 4항은 누구든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공표 또는 보도하는 때에는 조사의뢰자와 조사기관.단체명, 피조사자의 선정방법, 표본의 크기, 조사지역.일시.방법, 표본오차율, 응답률, 질문내용 등을 함께 공표 또는 보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박사모는 3일 경선무효 소송과 이명박 대선 후보에 대한 대권후보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을 서울중앙지법에 내기도 했다.

박사모는 "선거법 제57조의 2에 언급된 '당내 경선을 대체하는 여론조사'라는 것은 경선 후보 간 합의로 경선 대신 여론조사를 대체하기로 결정한 경우에만 효력이 있다"며 "경선과 여론조사 방식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고 둘 다 반영한 것은 위법이며 원천무효"라고 지적했다.

박사모는 또 "여론조사에 '1인 6표'에 가까운 가중치를 둬 '1인 1표'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어긴 점과 6000명의 여론조사를 반영키로 합의해 놓고도 별도의 서면합의 없이 시간에 쫓겨 5490명만 조사한 점 등이 경선 무효사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 이명박 후보측도 여론조사로 속이 편치 못하다.

정치권 전체가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문제 삼고 있는 마당에 정작 이 후보 본인은 여론조사 덕분에 겨우 박 전 대표를 이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선 기간 내내 주요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들은 물론 자신들이 내놓은 조사결과에선 월등이 앞섰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완전히 다른점도 가슴을 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더불어 당내 조직 장악에서도 앞섰던 점도 부끄럽게 하는 요인이다.

# 정치권이 이렇게 여론조사로 시끄러운 것과 달리 갑자기 조용해진 곳도 있다.

바로 한나라당 경선 기간 내내 다투어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은 언론사와 여론조사 기관들이다. 물론, '리얼미터' 등과 같이 정기적으로 여론동향을 조사해온 여론조사 기관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그밖의 언론사나 여론조사 기관은 입을 다물고 있다. 스스로 자신감을 상실했거나 불신의 불씨가 크게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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