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순수한 현실참여를 본 받아라

<채수경 칼럼>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변호

채수경 | 기사입력 2009/03/06 [18:12]

노무현의 순수한 현실참여를 본 받아라

<채수경 칼럼>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변호

채수경 | 입력 : 2009/03/06 [18:12]
자신의 오류나 오해에 대해 제대로 ‘변명(辨明)’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분별할 변(辨)은 형벌에 쓰이는 작고 뾰족한 칼을 본뜬 매울 신(辛) 두 개 사이에 칼 도(刀)를 끼워 넣은 것으로서, ‘辛’은 죄나 형벌과 관련된 고통 또는 어려움을 뜻하는 바, 그런 고통과 어려움을 칼로 자르듯이 시시비비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게 ‘辨明’이다. 영어 ‘excuse’ 또한 ‘-로부터’를 뜻하는 접두사 ‘ex-’와 ‘원인’을 뜻하는 ‘causa’가 합쳐져 만들어진 라틴어 ‘excusare’다. 역사상 유명한 ‘변명’들 중의 하나로 소크라테스가 BC 399년 아테네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될 때 법정에서 행한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ia Socratis)이 꼽히지만 소크라테스의 ‘Apologia’는 ‘-과 관련된’이라는 의미의 접두사 ‘apo-’와 ‘말’을 뜻하는 ‘logos’가 합쳐진 것으로서 ‘말’ 즉 ‘주장’이나 ‘논리’로 인한 시비를 해명하는 것을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자신의 논리가 옳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변(辨)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타인을 위한 것은 변(辯), ‘辨’은 스스로 분별하여 밝히는 것이므로 밝힐 명(明)이 붙어 ‘辨明(변명)’이라는 말이 만들어졌고 ‘辯’은 말로 타인을 감싸 보호하는 것이므로 감쌀 호(護)가 붙어 ‘辯護(변호)’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법정에서 피고를 편들어주는 사람을 ‘변명사(辨明士)’라고 하지 않고 ‘변호사(辯護士)’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난 세기 가장 유명한 ‘辯護’들 중의 하나가 바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불렸던 프랑스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호(Plaidoyer pour les intellectuels)’일 것이다.
 
이 책은 사르트르가 1965년 9월과 10월 일본 도쿄와 쿄토에서 세 차례 연속 행한 강연을 묶은 것으로서, 사르트르는 그 강연에서 “지식인들은 역사적·사회적 산물로서 지식인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현실에 안주하는 지식인들을 ‘변호’하면서도 “지배계급의 하수인이 되어 특수 논리를 옹호하는 지식인들은 부르주아 문명 비평가 폴 니장(Paul Nizan)의 표현대로 ‘집 지키는 개(Les Chiens de garde)’에 불과하다”고 통렬하게 꾸짖었었다.
 
작년 말 친형 건평이 알선수재혐의로 구속되고 측근들과 후원자들이 굴비두름처럼 엮여 쇠고랑을 차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동안의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어제는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정치인을 위한 변명 차원에서 작성했다”는 ‘정치하지 마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현실 정치인이 처할 수 있는 거짓말, 정치자금, 사생활 검증, 이전투구, 고독과 가난 등 5가지 수렁과 난관을 자세히 언급하면서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정치하지 마라’고 진담으로 말한다.
노력과 부담을 생각하면 권세와 명성은 실속이 없고 그나마 너무 짧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큰 나라에서는 자연 싸움이 거칠어지고 패자에 대한 공격도가혹해지기 마련인 바, 그런 싸움판에서 싸우는 정치인들은 스스로 각박해지고 국민들로부터 항상 욕을 먹는 불행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의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은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는 계층의 입장에 서거나 입장을 대변할 경우에만 갖게 된다”고 역설했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일 놈’이라고 욕할지언정 지난 1980년 타계한 사르트르만큼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많은 정치적 오류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집 지키는 개’는 아니었다는 점을 들어 적극 ‘변호’할 것임을 믿어마지 않는다. 박정희처럼 지역편중 인사·개발로 지역감정을 고착화시키지도 않았고, 김영삼처럼 자신의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독재세력과 야합하지도 않았으며, 김대중처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애쓰지도 않았다.
역설적이지만 정권이 바뀌자마자 친형과 측근과 후원자들이 개처럼 얻어맞아도 그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하는 지금의 노 전 대통령의 한심한 처지야말로 그가 얼마나 사심 없이 일했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이 아닌가? 과정에서의 잘못은 많았을망정 목표 지향만은 순수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부자와 기업 프렌들리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보편성 없는 특수한 논리를 만들어내는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이여, 그대들이 경멸하는 ‘가방 끈 짧은 노무현’의 순수한 현실참여를 본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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