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나이들의 의(義)와 리(理)

<채수경 칼럼> 한국정치사에서 본 한국 정치인의 의리

채수경 | 기사입력 2009/04/08 [20:59]

경상도 사나이들의 의(義)와 리(理)

<채수경 칼럼> 한국정치사에서 본 한국 정치인의 의리

채수경 | 입력 : 2009/04/08 [20:59]
한자문화권 사람들은 ‘의리(義理)’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 인(仁)이 개인의 덕성이라면 의(義)는 사회적 덕성, 공자로부터 인의 사상을 물려받았던 맹자는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라고 의를 중시했었다.
그 의가 송나라 때 주자가 궁구한 리(理)와 합쳐지면서 인간윤리의 으뜸으로 자리를 잡아 주자의 학문을 ‘성명의리지학(性命義理之學)’ 즉 ‘성리학’이라고 부르게 됐다. 한자 ‘義’는 그 옛날 상서롭게 여기던 동물 양 ‘羊’과 과시하기 위한 의장용 창을 본떠 ‘나’ 또는 ‘우리’를 뜻하던 ‘我’가 합쳐진 것으로서, ‘나’ 또는 ‘우리’가 상서롭다고 여기는 당대의 가치관을 뜻했으나, 성리학의 ‘理’와 합쳐지면서부터는 ‘올바름’ ‘마땅함’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
‘理’는 구슬 옥(玉)과 반듯반듯한 밭이 구획된 모양의 마을 리(理)가 합쳐진 것으로서 원래는 ‘옥을 다듬다’라는 의미였으나 옥은 쪼개지는 방향이 일정하기에 ‘이치’ ‘불변의 법칙’ 따위를 뜻하게 됐다.
 
의리는 의와 리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정당성을 확보한다. 의를 리보다 앞세우면 집단이기주의가 고착화되고 리를 의보다 앞세우면 비인간적인 냉혹한 원리주의가 판치게 된다. 도둑놈들끼리 서로 돕는 경우 그 또한 분명히 의는 의지만 ‘도둑질은 나쁘다’라는 리에 어긋나므로 본받을 게 못 된다. 반면 도둑질은 분명히 리에 어긋나지만 굶어죽기 직전의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먹을 것을 도둑질한 부모를 법대로 처벌하면 세상이 살벌하게 변해버린다.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지만 화끈하고 의리가 있다고 해서 ‘경상도 사나이’로 불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진짜 경상도 사나이 중의 사나이?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사석에서는 서로 말을 놓고 지냈다는 죽마고우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검찰에 의해 까발려지자 정 전 비서관이 혼자 뒤집어쓸지도 모른다고 우려하여 ‘응분의 법적 평가’를 각오하고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 사용한 것”이라고 이실직고했다.
경상도 사나이를 자처하는 박연차가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에는 ‘의리 하나로 팍팍 밀어주는 후원자’를 자처하다가 궁지에 몰리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헌신짝처럼 내버려 지저분한 눈총을 받고 있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의리 또한 자기들만의 ‘의’에 치우친 나머지 검은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리’는 저버린 것이어서 씁쓸하기 짝이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으면서도 민주당을 깨고 한나라당의 대북송금특검요구를 수용하여 김 전 대통령 얼굴에 먹칠을 하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으로 하여금 투신자살하게 한 배신에 대해선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가 친구간의 사소한 의리를 내세워 자신의 허물을 축소 고백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참으로 가소로운 의리다. 그래선지 노 전 대통령의 우려(?)와는 달리 정 전 비서관이 체포 7시간만에 돈의 종착지를 실토했다는 말이 나도는 가운데 변호사 출신의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의 칼끝이 자신을 겨눠오자 숙고 끝에 상처 입을 각오하고 반격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돈다.
 
의리 좋아하는 경상도 사나이들의 얼굴이 화끈거리게 생겼다. 우물 안 개구리들의 의리가 초라하기만 하다. 지역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1992년 대선 때 경남 거제 출신의 김영삼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 한 마디로 대구·경북 표를 싹쓸이했으나, 당선 후 독재자 박정희를 깎아내리고 전두환·노태우에게는 쇠고랑까지 채움으로써 이후 경상도가 TK와 PK로 갈라져버렸고, 전라도당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경상도당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손 봐줘야할 배신자’로 낙인찍힌 나머지 다시 경상도 사나이들이 정권을 잡은 지금 몰매를 맞고 있음에 ‘경상도 사나이들의 의리’라는 것 또한 권력과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본인들도 부인하지 못할 듯싶다. 실제로 TK의 의리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친이’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친박’으로 쪼개지기 일보직전, 똘똘 뭉쳐 권력을 잡은 후 이익을 나눠먹는 자기네만의 의(義)일뿐 남이나 반대파가 인정하는 리(理)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의 좋아하는 맹자도 눈살 찌푸릴 역겨운 의다.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newyorktoday(원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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