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의원, 북한 김정일 또 만날까?

16일 강연서 "김정일 위원장 만나 대화 나누고 싶다" 방북의사 피력

정도원 | 기사입력 2009/04/16 [15:03]

박지원 의원, 북한 김정일 또 만날까?

16일 강연서 "김정일 위원장 만나 대화 나누고 싶다" 방북의사 피력

정도원 | 입력 : 2009/04/16 [15:03]
남북관계가 경색이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공개적으로 방북의사를 밝혀 남북대화를 물꼬는 여는 대화메신저로서 역할이 주목된다.
18대 국회에 입성, 대북정책통으로 인정받고 있는 박지원의원이 방북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밝힌 배경이 북한과의 사전교감이 있었는지에도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0년 대북특사로 북측 특사와 만나 6.15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4.8합의서’를 탄생시켰고, 6.15남북정상회담과 언론사 사장단 방북 등 두 차례에 걸쳐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가장 격의 없이 대하는 남한 인사’로 알려진 박 의원의 방북이 성사될 경우 남북관계의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박 의원은 4월 16일 오후 목포 문화체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서남권 아카데미 초청강연’에서“2000년 8월 언론사 사장단과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 부부와 이미자 선생을 평양에 초대하면서 ‘이미자 선생의 공연을 본 후에 좋으면 인민에게 공개를 하고, 장관 선생 내외는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자’고 평양에 초청했다”는 내용을 공개하며 “이제 우리 부부가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을 받아들여 가수 이미자 선생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기를 희망 한다”면서 “이미자 선생은 공연을 하고, 저는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방북 의사를 밝혔다.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이 현재까지 유효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박 의원은 “ 2001년 모 TV방송사가 이미자 선생의 평양공연을 추진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 부부가 사정상 동행하지 못한다는 말에 북한이 무산시켰다”고 말하고 “제가 어려움을 당할 때 약을 보내겠다는 북한 고위급 인사의 전갈과 함께 ‘장관 선생 내외에 대한 초청이 살아있으니 꼭 평양을 방문해 달라’고 했다”며 “이제는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 한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에게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꾸준하게 촉구하고 있는 박의원은 최근 이 대통령의 대북특사파견 용의 발언에 "진일보한 대북정책의 전환"이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 바 있고,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부시 대통령 대북강경정책이 아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대북화해정책을 받아드려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1차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징을 만나고 있는 박지원  의원(중앙)
박 의원은 이날 강연에서 “북한의 지나친 강경자세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오바마 정부를 화나게 할 수도 있다”며 “지금이 벼랑 끝이고, 북한이 지금 벼랑 끝 전술을 끝내지 않으면 낭떠러지도 떨어지는 길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북한이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북한의 강경자세 변화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우리가 평화로 가려면 이명박 대통령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인정하고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대북특사도 북미관계 개선과 병행해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우리가 당사자로서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 의원은 PSI 전면참여 문제에 대해 “PSI는 지금도 부분참여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우리 영해에서 북한 선박을 조사하겠다고 하면 바로 충돌이 일어난다”며 “실효성도 없고 충돌만 예상되며, 남북관계만 악화시킬 PSI의 전면참여는 해서는 안된다”고 PSI 전면참여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지원 의원의 강연 원고 <전문>
 
저는 지난 4월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이미자 선생의 가요 50년 기념콘서트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콘서트를 주최하는 언론사 간부는 “이미자 선생이 정치인 3명을 지정해 초청했다”고 했습니다. 왜 제가 초청을 받았을까? 제가 이미자 선생과 여러 인연이 있어서 이러한 영광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2000년 6월 15일 오후 2시경, 장소는 평양 백화원 영빈관 오찬장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이제 우리 남측 대표단은 이 오찬을 끝내면 서울로, 평양 사람은 평양에 남아 헤어지는 자리였습니다. 분단 이후 최초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더욱이 6.15공동선언에 합의 서명했기 때문에 기쁨이 넘치는 오찬장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헤어진다는 서운함도 함께 한 자리였습니다.
 
마침 헤드테이블에서 식사 중이었던 김정일 위원장에게 우리 측 특별수행원인 LG 구본무 회장, SK 손길승 회장, 삼성 윤종용 부회장 등이 건배를 하기 위해 헤드테이블로 모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내외분도 일어서고 김정일 위원장도 일어서서 모두 건배를 했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 모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자”고 제의하여 노래를 불렀고, 이 모습이 방송과 신문에 많이 소개되는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식사 중에 제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여자 가수는 이미자, 김연자, 은방울 자매를 좋아하고, 남자 가수는 조용필, 나훈아, 남진 이라고 하면서 “요즘 한국 TV를 보면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노래를 하고 뛰기만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HOT 등 신세대 가수들이 TV 무대를 석권하고 있어서 “저도 이해 못한다”며 함께 웃었습니다.
 
이때 이헌재 재경부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그런 가수들보다 박지원 장관이 노래를 더 잘 부른다”고 하였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박수로 청해서 제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제가 2000년 3월초 문화관광부장관 재임 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대북특사로 임명받고 싱가폴, 상하이, 베이징 등에서 북한 특사와 만나서 회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제가 어릴 때 교육받았던 ‘뿔 달린 사람’이 아니라 저와 똑같은 사람이었고, 형제였습니다. 싱가폴 호텔에서 처음 만난 북한 특사는 4~5시간의 회담을 끝마치면서 “장관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김대중 대통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순간 저는 정상회담의 성공을 예상했고, 귀국해서 이런 즐거운 소식을 김대중 대통령께 보고했습니다. 저와 북한의 특사는 상하이, 베이징 등에서 계속 만나면서 회담을 진전시켰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경에서 다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아 만났고, 드디어 남북특사인 박지원과 송호경이 6.15남북정상회담에 합의한 ‘4.8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흥분을 지금도 간직하면서 9주년이 되는 올해 4월 8일에도 남북문제에 대한 희망을 생각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3일 G20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영국에서 가진 로이터, 블룸버그, AFP 통신과의 합동인터뷰에서 “북한이 특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면 특사를 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4월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대북특사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 했습니다. 대통령의 발표를 관계 장관이 모른 채 엉터리 답변을 해서 혼선만 일으킨 것입니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했을 때도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의장인 유명환 외교부장관은 “인공위성 발사 시도로 본다”고 했고, 청와대 대변인은 ‘미사일’이라고 했다가 기자들의 항의에 ‘로켓’이라고 바꿨습니다.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장거리 로켓’이라고 했습니다.

PSI 전면참여 문제도 혼선이 계속 됐습니다. 정부는 당초 PSI 전면참여를 어제 오전 10시에 공식 발표하겠다고 했다가 ‘관계국과의 협의가 진행 중이고, 내부 기술적 검토가 남았다’며 미뤘습니다. 그렇다면 ‘협의도 안 되고 검토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식발표를 하겠다고 했다는 말 밖에 안됩니다. PSI는 지금도 부분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해에서 북한 선박을 조사하겠다고 하면 북한이 응하겠습니까? 바로 충돌이 일어납니다. 실효성도 없고 충돌만 예상되며, 남북관계만 악화시킬 PSI의 전면참여는 해서는 안됩니다. 정부와 청와대가 이렇게 혼선만 거듭하고 있어서 우리 국민은 혼란스럽고,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진심이 무엇인지 신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대북 특사는 파견해야 합니다. 또한 대북특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남은 4년 임기를 함께 할 사람이 가야합니다. 그러면 과거 대북특사 경험이 있던 사람들, 저도 협력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예측으로는 불행하게도 북한이 현재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특사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UN안보리의 북한 로켓 발사에 대한 의장성명에 대해 북한은 ‘6자회담을 탈퇴하고 핵 연료봉 봉인을 열어 핵무기 생산을 계속 하겠다’는 강경한 발표를 했고, 실제로 핵 불능화 작업에 관여하고 있는 미국의 핵 전문가들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들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는 그동안 수차례 TV와 라디오 등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 대해 일련의 강경한 자세를 비판하며 중지할 것을 촉구해 왔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북한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강경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다시한번 촉구합니다.
 
북한은 9년 전인 2000년의 안타까운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서 북한과 미국에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권유하였고, 조명록 차수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교차방문으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중동문제로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의 회담을 하기 위해 평양방문의 기회를 갖지 못했고, 대신 김정일 위원장을 미국으로 초청했지만 이 역시 김정일 위원장의 불응으로 무산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북한은 새로 취임한 부시 대통령의 대북강경정책으로 클린턴 대통령과 합의했던 미사일 발사유예, 핵개발 중지 약속을 깨고 미사일을 발사했고, 핵실험을 했으며 드디어 이번에 로켓도 발사했습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물러났고 오바마 대통령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더욱이 오바마 정부의 대북외교라인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보즈워스 대북정책 대표 등 과거 김대중-클린턴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직접 담당했던 인사들로 구성되었고,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의 대북정책은 부시의 정책이 아니라 클린턴의 정책’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클린턴 국무장관도, 보즈워스 대북정책 대표도 김대중 전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햇볕정책이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더욱이 아서 브라운 오바마 인수위 전 정보팀장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한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미국 국무성의 지시를 받을거냐, 남한이 안하면 미국이 직접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1998년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햇볕정책에 대한 설명을 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이제부터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대북문제에 있어서 운전석에 앉으시고 나는 조수석에 앉겠다”라고 한 내용과 똑같습니다.

거듭 밝히지만 북한도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스스로 ‘핵이 밥 먹여주느냐’며 한반도 비핵화 의사를 수차례 밝혔습니다. 북한을 안정시키고 경제발전을 시켜줄 나라는 미국 밖에 없습니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의 지상 최대목표도 미국과 관계개선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유럽 방문에서 ‘핵 없는 세계 건설’을 부르짖으며 이란과도, 모든 이슬람 국가들과도 관계개선을 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1962년 구 소련의 미사일기지 설치 위기로 금수조치를 단행한 이후 47년 동안 계속된 쿠바에 대한 여행과 송금제한을 풀면서 ‘미국판 햇볕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도 언제까지 보장할 수 없습니다. 북한도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1기, 임기 4년 동안 자신들이 표방하는 2012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북한의 지나친 강경자세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오바마 정부를 화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 벼랑 끝입니다. 북한이 지금 벼랑 끝 전술을 끝내지 않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 정부도 돌아가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 1년은 총체적으로 실패한 1년입니다.  민주주의, 경제, 대북문제가 실패하고 있습니다. 경제는 무너져도 살릴 수 있지만 대북문제는 무너지면 끝입니다. 전쟁이냐? 평화냐? 누가 전쟁을 택하겠습니까? 1994년 UN군사령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24시간 이내에 수도권에서만 15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고 했고, 10년 후인 2004년 우리 군 당국의 워-게임 즉, 가상전쟁 분석보고서에 의하면 220~230만 명의 사상자가 난다고 합니다. 그 후로 5년이 지난 지금 전쟁이 난다면 3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저는 봅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꽃게잡이 철에 서해안에서 충돌이 나고, 북한 로켓 발사 후 계속해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다면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에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신용등급이 한 등급 하락하면 0.35%의 추가 금융비용 즉, 이자가 올라갑니다. 지금 우리 외채 2,000억불의 0.35%는 7억 달러, 연간 1조원 정도의 추가 이자를 내야 합니다. 금융기관, 민간 기업으로 이어지면 더욱 막대한 손해가 발생합니다. 그 밖에도 너무나 많은 손해가 있지만 제가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쟁이 나면 죽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경제적 손해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화로 가야 합니다. 평화로 가려면 이명박 대통령께서 직접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인정하고 지키겠다고 선언하셔야 합니다. 대북 특사도 북미관계의 개선과 병행해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우리가 당사자로서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야 합니다. 김대중 전대통령께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한다는 전제 아래 국무총리를 북한에 특사로 보내서 진의를 이야기하고 정상회담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지금은 다소 꼬이고 있지만 미국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제일 싫어합니다. 우리도 평화를 위해서 해결돼야 하고, 북한도 그 길 밖에 없기 때문에 전망은 밝다고 저는 정리합니다. 저는 2000년 8월 5일부터 12일까지 7박 8일 동안 언론사 사장단 46명과 함께 평양과 백두산 등을 방문했습니다. 다시 만난 김정일 위원장과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많이 마시던 와인을 조금 마셨습니다. 독주를 마셨고, 담배도 많이 피웠었지만 의사의 권유로 다 끊고 와인도 가볍게 마신다고 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저와 대화 중에 “장관 선생 내외와 이미자 선생을 평양에 초대합니다. 저와 함께 이미자 선생 공연을 보고 좋으면 다음날 인민에게 공개합시다. 그리고 장관 선생 내외는 우리 집에서 식사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2001년 모 TV방송사에서 이미자 선생의 평양 공연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저희 부부가 사정상 동행하지 못한다는 말에 북한 측에서 공연을 무산시켰습니다. 제가 어려움을 당할 때 약을 보내겠다는 북한 고위급 인사의 전갈과 함께 ‘장관 선생 내외에 대한 초청이 살아있으니 꼭 평양을 방문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희 부부가 이미자 선생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기를 희망합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미자 선생은 공연을 하고, 저희 부부는 김정일 위원장의 집에서 식사도 하고 싶습니다. 다시 만난다면 식사만 하겠습니까?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미자 선생은 5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꽃피는 유달산아’를 불렀고, 저도 따라서 불렀습니다. 평양에서 이미자 선생의 ‘동백 아가씨’ ‘꽃피는 유달산아’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지자체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