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관, 국민들을 제대로 한 수 가르치다

[시사 큐비즘] 천성관 전 내정자와 신영철 대법관 사태

최재천 변호사 | 기사입력 2009/07/17 [01:30]

천성관, 국민들을 제대로 한 수 가르치다

[시사 큐비즘] 천성관 전 내정자와 신영철 대법관 사태

최재천 변호사 | 입력 : 2009/07/17 [01:30]
지금까지 대한민국 법조인들은 특권계층이었다.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난 사람이었다. 과거시험 수준의, 그 어려운 고시를 합격한 천재들이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다. 우리 사회의 철인들이었다.

결혼중매업체가 가장 선호하는 소개의 대상이었다. 법조인이 결혼할 때면 아파트 등 열쇠 두어 개 쯤 받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법조인 며느리나 사위를 맞기 위해서는 그 정도 지참금쯤은 감수해야 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상식이었다.

법조인은 법률지식뿐만이 아니라 양심가로 비춰졌다. 어릴 때부터 사회적 정의를 위해 커다란 꿈을 키워온 사람들이었다. 사법시험 수석합격자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면 사회적 정의를 위해 법조의 길을 택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그런 법조인들이었다. 그런 법조계였다.

 


비리검사 표본, 천성관이 남긴 것은
 
그런데 시민들은, 국민들은 이제 다 알아버렸다. 법조인들의 인간적 양심, 직업적 양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다 알아버렸다. 최근의 세 가지 사건을 통해서였다.

첫째는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를 둘러싼 인사청문회 등 검증과정에서 법조인들의 생활과 생계와 혼사와 병역과 주거와 해외여행과 명품선호 등을 충분히 알게 됐다. 그래서 법조인들의 집안과 아파트 구석구석을 충분히 둘러보게 됐다.

둘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검찰 수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고, 법전에도 없는 ‘포괄적’ 뇌물죄가 법원도 아닌 검찰에 의해 어떻게 창설될 수 있는지, 어떻게 죄형법정주의를 벗어나서 새롭게 죄목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어떤 방식으로 무죄 추정이 아닌 유죄가 추정되고, 법적 비난보다는 도덕적 비난을 통해 한 사람을 사형시킬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여론재판도 아닌 언론을 이용한 수사가 무엇인지도 알게 됐고, 피의자는 곧 범죄자라는 사실도 알게 됐고, 피의사실 공표는 단지 일반인들에게만 해당된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알게 됐다. 그래서 법조인들과 검찰청사의 속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게 됐다.

셋째는 신영철 대법관 사건이다. 사법부 내부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사건에 대한 압력과 영향력, 그리고 사법관료제를 비로소 알게 됐다. 법관들은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하는 줄 알았고, 사법행정은 이런 독립성을 철저히 존중해 주는 줄 알았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법과 양심에 따라 국민 앞에, 헌법 앞에 책임을 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신영철 대법관은 대법관이다. 헌법이 정한 우리나라 최고법원의 구성원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알게 됐다.
 
법원에서 재판이 어떻게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됐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내밀한 흔적을 살짝 엿보게 됐다. 권력이 어떻게 독립된 사법부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스스로 알아서 긴다’는 표현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이 사건에서는 아니었겠지만 최소한의 유적을 발견한 셈이다. 
 
변호사들은 굳이 지적할 이유도 없다. 재야와 재조의 이분법은 대한민국에서 갑을관계만큼이나 공고하다. 재야는 들판이다. 황야다. 황무지다. 그래서 재조를 늘 그리워한다. 봉건시대의 재조의식은 지금까지도 법조계의 똬리를 틀고 있다.
 
변호사들은 스스로 재야라 자초한다. 그래서 여전히 재조법조인들이 사표를 던지면 이는 사건이 되고, 청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표를 쓰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고, 그 표현마저도 ‘옷을 벗었다’라고 표현된다. 최소한 옷을 갈아입었다도 아니다. 신발을 바꿔 신었다도 아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이제 법조계의 속내를 알아버렸다. 법조인들이 어떻게 선발되었는지, 어떻게 사회화되고 있는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서 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운용하고 있는지.
 
또 어떤 가치들을 공유하고 있는지, 그 가치에 정치적 이유로 편승하는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의 이기주의는 어떤지, 그들끼리의 홈커밍데이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왜 단지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청문회장에서 동기 국회의원에 의해 동기 출신 검찰총장 후보자가 칭송되어야만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그래서 시민들은 이제 법조계를 이해하게 됐다. 사법부의 독립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공정성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고전적 명제가 있다. 법이 어떤 계층이나 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더 좁게는 지극히 폐쇄적인 족내혼에 가까운 자기들만의 일종의 ‘근친상간’식 보호와 법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충분히 엿보게 됐다.

문제는 입법부와 행정부는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데 반해,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라는 점이다. 오로지 사법시험이다. 거기에 사법연수원 성적이 더해진다. 철저히 성적순이다. 헌법적 정통성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성적이 법조인의 양심과 도덕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 시민들은 이를 믿고 싶어 했다. 스스로 최면에 빠져 있었다. 법조인들을 타자화시키고 우상화시키고 있었다. 이러는 사이 법조인들은 독립성을 무기삼아 어떠한 책임의식도 없이, 역시 스스로를 특권화시키고 사회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통해 모든 비평과 견제로부터 자유로워져 갔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절대권력은 없다. 주권자인 시민으로부터 자유로운 권력은 없다. 편파적으로 이익을 대변하거나 정파적으로 사법권력을 악용하는 방식을 이제 시민들은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법이라는 이름의 폭력성과 사법적 오류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됐다. 견제와 감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법조권력을 견제해야하고 남용을 막아야 된다는 데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사법권력의 기득권과 자폐성을 타파하고 민주적 통제의 틀 안으로 집어넣어야 된다는 데 대해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사법부가 한 개인의 입신양명의 최고봉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는 데 대해서도 동의하기 시작했다.

가깝게는 70~80년대로 가보자. 그 때 진정 정의와 양심에 기초한 법조인이 있었더라면 과연 쿠데타가 존재했을까. 유신독재권력이 존재했을까. 인권탄압과 국가폭력과 억울한 사형판결이 존재했을까. 내란죄의 주범이 한 나라의 영도자로 지칭될 수 있었을까.
 
억울한 사람이 갑자기 간첩으로 내몰릴 수 있었을까. 오죽했으면 수사 받던 중 뛰어내려 자살하는 서울대 법대 교수가 있었고, 오죽했으면 난로에다 얼굴을 파묻어 얼굴이 온통 일그러져버린 양심수가 생겨났을까. 오죽했으면 ‘탁’하고 친히 ‘억’하고 죽는 일이 생겨났을까. 다들 독재권력의 탓을 한다.
 
하지만 삼권분립의 한 축인 제대로 된 사법부, 그리고 늘상 사회정의를 외치는 제대로 된 검찰, 그리고 역시나 정의를 얘기하는 제대로 된 변호사단체가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미국은 선거로 뽑는 법조직역이 많다. 꼭 그것을 본받자는 것은 아니다. 수평적, 수직적 견제로부터 자유로운 법조권력을 어떻게 견제하고 진정 법조라는 최고권력이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사용돼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로스쿨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시험으로 또 줄 세워 놓고 법조인을 선발하고, 마치 사관학교처럼 여전히 출신기수를 따지고 특권의식으로 중무장한 채 로보캅처럼 행동하는 또 다른 법조인을 양성하는 데 그칠 것이다.
 
법조인들의 특권의식, 사회의 법조인들에 대한 선망의식은 하루 아침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깨트리자는 것이다. 공인중개사 면허는 왜 장롱에서 썩어도 되고, 왜 변호사 면허는 장롱에서 썩으면 안되는가.
 
진짜 시장이라면 대형슈퍼와 구멍가게를 경쟁시킬게 아니라, 그래도 시장에 잘 적응할 가능성이 있고 조건이 갖춰진 변호사 등 법조인들부터 경쟁을 시켜야 한다. 이 점은 의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도리어 이들은 철저히 수급논리가 펼쳐지고 시장의 규모에 따라 계산되고 보호되어 진다.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해 이제 시민들은 관심을 갖게 됐다. 변호사단체, 사법부, 검찰 등에 대해 이번 여러 사건들을 통해 속내를 들여다보게 됐다. 비로소 알게 됐다. 이해하게 됐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올 상반기 우리 사회의 성과요, 교훈이다. 반면 교사다. 지금까지 베일에 쌓여 있던 법조계를 알게 됐고, 이들을 어떻게 견제하고 통제하며 균형감 있게 행동하도록 이끌어 갈지가 비로소 시민들의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늦었지만 천만다행이다.
 
<최재천 변호사 / 전 국회의원>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추천칼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