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법안 날치기 하려는 자와 막는자

<추천칼럼> 참 재미있는 일탈

채수경 | 기사입력 2009/07/17 [12:50]

국회서 법안 날치기 하려는 자와 막는자

<추천칼럼> 참 재미있는 일탈

채수경 | 입력 : 2009/07/17 [12:50]
더불어 사는 사회의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일탈(逸脫)’이라고 하여 흔히 비행(非行)이나 과도한 음주, 매춘, 싸움 등 나쁜 것들을 떠올리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달아날 일(逸), 벗을 탈(脫), 권태와 피로의 평행선으로 뻗어가는 일상의 지루한 기찻길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도 포함된다. ‘일탈’을 뜻하는 영어 ‘deviancy’의 뿌리 또한 ‘-로부터 떨어져’를 뜻하는 접두사 ‘de-’에 ‘길’을 뜻하는 ‘via’가 합쳐져 만들어진 라틴어 ‘deviare’다. 인생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나그네 길이라면, 그 길이 너무 권태롭고 심심하다면, 잠시 그 길을 벗어나 뭔가 새롭고 재밌는 것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이야말로 인지상정이 아닌가?! 해 뜨면 집에서 직장으로, 해 지면 직장에서 집으로, 시계불알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어느 비 오는 날 넥타이 푼 채 변두리 카페에 들러 먹고 사는 문제 잠시 잊어버리고 립스틱 짙게 바른 마담과 쓸 데 없는 농담을 나눴다고 해서 손가락질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누구나 한번쯤 멋진 일탈을 꿈꿔보지만 그게 쉽지 않다. 말 그대로 꿈만 꿀 뿐. 아일랜드 출신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도 그랬다.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욋가지 엮어진 흙 바른 작은 오두막을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 통 하나/ 벌 윙윙 대는 숲속에 나 혼자 살리라....‘이니스프리의 호도(The lake isle of Innisfree)’는 예이츠의 고향이 아닌 어머니의 고향인 아일랜드 북서부 슬라이고의 호수섬, 더블린 교외 샌디마운트에서 태어난 예이츠는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슬라이고에 자주 갔었고 그 때 뇌리에 새겨진 아일랜드 북서 해안의 풍경이나 농민들의 요정 이야기 등 덕분에 그런 목가적인 시를 썼겠지만 기실 그의 삶은 목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름대로 현실을 직시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다. 젊어서는 소시민들의 보잘 것 없는 일상을 시니컬하게 비웃는 한편 나이 들어서도 아일랜드 독립운동이나 내란, 혼란, 공포, 불모성 등을 초월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애썼다. 35세 때 발표한 ‘이니스프리의 호도’ 또한 그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서, 진짜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 아닌 영혼의 안식처로서의 고향, 그곳에 가서 평화를 맛보고 싶어서 읊은 것이었던 바, 말하자면 일종의 고상한 일탈이었다. 
 
정치한답시고 싸움박질만 하다가 그조차도 지겨웠는지 여야 의원들이 함께 점거한 채 밤을 새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가서 ‘이니스프리의 호도’를 낭송해주면 어떨까 싶다. 그놈의 국회의원 배지가 뭔지 나름대로 지지 세력의 이해를 대변한답시고 온갖 손가락질 다 받아가면서 목불인견의 코미디를 벌이고 있는 그들이 얼마나 큰 부끄러움과 함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미디어 관련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그걸 몸으로라도 저지하려고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나 하나하나 놓고 보면 다 마음씨 좋고 착한 사람들, 당리당략으로 볼썽사나운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기는 하지만, 밤샘을 하면서 통닭과 과일을 사다가 사이좋게 나눠먹었다는 소식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허허 웃어주고 싶다. 너무나 유치하고 소박하고 인간적인 일탈이어서 눈 부릅뜨고 비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찌할 수 없을 때 그냥 웃어넘기는 것도 일탈, 민주화 투사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형대에 세우려했던 독재자 출신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쾌유를 비는 난을 보내는가 하면 귀가 따갑게 ‘강부자 내각’ ‘고소영 정권’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홍은동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41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여 “내가 대통령이 된 것은 서민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고 돌보라는 소명이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도 참 재밌는 일탈, 아무쪼록 그런 일탈이 더욱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말난 김에 셋이 주동이 되어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불러내 여의도 노래방에 가서 자기 18번을 차례로 불러보면 어떨지?! 예이츠가 환생한다고 해도 절대로 비웃지 않을 것임을 장담한다.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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