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한국국회'보다 더 창피한 것은?

<추천칼럼> 미국 TV에 등장한 한국 국회 날치기 장면을 보고

채수경 | 기사입력 2009/07/23 [23:52]

'난장판 한국국회'보다 더 창피한 것은?

<추천칼럼> 미국 TV에 등장한 한국 국회 날치기 장면을 보고

채수경 | 입력 : 2009/07/23 [23:52]
코리아 하면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김치? 비빔밥? 아니다. ‘한국 국회’일는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NBC 투데이 쇼에서도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동영상이 등장하여 설거지하고 빨래하던 미국의 주부들을 피식 웃게 만들었었다.
실제로 구글 등의 검색창에 ‘south korea parliament’를 치면 ‘fight(싸움)’나 ‘brawl(주먹다짐)’ 등의 단어가 자동으로 따라붙어 검색어가 완성되는 가운데 ‘south korea parliament fight’는 총 1,280,000개, ‘south korea parliament brawl’은 30,700개의 기사와 동영상이 뜬다. 이곳 미주한인사회의 한 일간지가 지난 달 23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석한 65개국 369명의 한인회 전ㆍ현직 간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해외에서 모국을 지켜볼 때 가장 창피한 것은?”이라는 질문에 응답자 258명 중 41%인 117명이 ‘국회 난장판’을 꼽았던 것도 그와 무관치 않겠지만 ‘난장판 국회’보다 더 창피한 게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려는 더러운 자본주의와 선전선동에 능숙한 정치인들이 무식한 시민들을 데리고 노는 한심한 민주주의가 결합하면? 창녀와의 대화 녹취록이 까발려져 개망신을 당하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같은 돈 많은 놈팡이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이탈리아 최대 미디어 재벌이었던 베를루스코니가 정치판에 뛰어든 것은 1994년, 재산 축적과정에서 돈 세탁과 탈세 등 각종 비리로 인해 검찰의 칼날이 자신의 목을 겨눠오자 돈과 언론을 총동원하여 ‘전진 이탈리아당(Forza Italia)’을 창당하여 국민연합 및 북부연맹과의 연정으로 정계 진출 두 달 만에 총리가 됐고 총리가 되자마자 검찰의 부패 추방 수사를 중단시키면서 자신에 대한 보호막부터 쳤었다. 축구경기 승부 조작설, 이런 저런 추문에 마피아 연루설까지 나돌던 그가 세 번씩이나 총리직에 취임할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의 돈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로마 시내의 껌팔이들도 다 아는 상식, 그런 놈팡이가 총리로 군림하는 이탈리아의 이미지가 좋을 리 만무, 이탈리아는 세계 6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전 세계 언론의 자유를 감시하고 있는 미국의 프리덤하우스는 이탈리아의 언론자유를 세계 77위라고 혹평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신문법과 방송법, IPTV법 등 미디어 관련 3개 법안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4개 법안이 결국은 날치기로 통과돼 조만간 한국에도 베를루스코니와 같은 놈팡이들만 판을 치게 생겼다. 언론을 자사이익추구 도구로 써먹어온 족벌신문들은 방송이라는 또 하나의 날개를 달았고, 재벌들은 언론과 금융의 쌍권총을 차게 됐고, 거기에 빌붙은 정치인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로 재선되면서 뒷돈 받아먹고...거대한 정(政)-경(經)-언(言) 복합체가 민주주의를 압살시킬 게 뻔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다.
한나라당과 청와대에선 한 건 올렸답시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들 또한 머잖아 정(政)-경(經)-언(言) 복합체의 똘마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 자신만 모르는 것 같아 비웃음이 절로 머금어지기도 한다. 임기가 있는 정치권력은 유한한 반면 임기가 없는 언론권력은 무한한 바, 정(政)-경(經)-언(言) 복합체가 몸집을 불리고 나면 대통령이 되려면 미디어재벌의 눈도장부터 받아야 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면 기자들에게 신고식부터 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명박 정권이 고소영 친구들 밥 지어먹일 장작 팬답시고 제 발등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글 검색 창에 ‘south korea’를 치면 ‘언론자유 말살’ ‘정경유착’ ‘권언유착’ 등등의 지저분한 말들이 줄줄이 딸려 나올까봐 겁난다. 해외에서 모국을 지켜볼 때 가장 창피한 것은? ‘난장판 국회’가 아니라 ‘민주주의 후퇴’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 창피하다.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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