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美 대통령까지 가세한 흑백갈등

<추천칼럼> 하버드의 백인거지와 흑인교수

채수경 | 기사입력 2009/07/26 [11:54]

오바마 美 대통령까지 가세한 흑백갈등

<추천칼럼> 하버드의 백인거지와 흑인교수

채수경 | 입력 : 2009/07/26 [11:54]
하버드대를 품고 있는 도시 케임브리지는 거미줄 모양의 계획도시로서 그 중심은 하버드 스퀘어다. 사람들 붐비는 곳은 어느 곳이나 다 거지들이 진을 치고 있듯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하버드 스퀘어에도 거지들이 많지만 대부분 머리가 노랗고 피부가 하얀 양키들이고 흑인들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하버드 스퀘어의 명물 신문판매대 ‘Out of Town News’ 건너편 택시 승강장에 진 치고 있는 한 50대 백인 거지는 행인들이 적선을 하든 말든 웅크리고 앉아 시집을 읽는 풍모(?)를 자랑하기도 한다.
미국의 여타 도시와는 달리 흑인 거지들이 드문 것은 케임브리지 자체가 인구 9만5천8백명의 깔끔한 교육도시로서 원 베드룸 아파트 한 달 렌트가 1천5백달러에 달하는 등 흑인 빈민들이 살기에는 너무 고급(?)스런 도시이기 때문, 가난한 흑인들이 해먹고 살 수 있는 일거리도 별로 없거니와 청교도들의 전통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문화나 삶의 방식이 백인 위주여서 그런지 조용하고 온순한 도시답지 않게 인종차별 논란 또한 끊이질 않는다.
 
하버드대가 세계 최고의 대학답게 개방적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캠퍼스 내에서 흑인문화를 편안하게 접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2002년 가나 출신의 앤터니 아피아 교수와 헨리 루이스 게이츠 2세, 코널 웨스트 교수 등 흑인 문화와 역사 및 흑백차별을 연구하는 흑인교수 3명이 로렌스 서머스 당시 총장과의 불화 끝에 앤터니 교수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아이비리그 중 유색인종들이 숨 쉬기도 곤란하다는 뉴저지 남부 프린스턴대학으로 옮겨가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도 하버드 특유의 백인 위주의 분위기 때문이었다는 데 토를 달지 못한다.
하버드를 나와 28세 때 종신교수직을 받아 오만하기 짝이 없던 서머스 전 총장은 2004년에도 하버드 여름학기 개강 연설 중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도 않은 채 “1970년대 1백만명에 가까운 서울의 어린 소녀들은 먹기 위해 대부분 창녀노릇을 했지만 미국이 원조한 덕분에 경제가 발전돼 창녀생활을 면할 수 있었다”고 발언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런 저런 물의 끝에 서머스 총장이 사임한 후 취임한 여성총장 드류 파우스트가 지난 해 1636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흑인여성인 에벌린 해먼즈 교수를 케임브리지 캠퍼스 학장에 임명한 것도 하버드 내에 고착화된 백인 위주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려보자는 것이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서머스 전 총장에게 괄시받았던 헨리 루이스 게이츠 2세 교수가 이번에는 해외여행에서 돌아와 자신의 운전사와 함께 자신의 집 문을 강제로 열던 중 그들을 강도로 오인한 누군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대들었다가 일시 체포됐던 해프닝을 놓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어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같은 흑인이랍시고 “만약 내가 백악관에서 그런 식으로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한다면 총을 맞을 것”이라는 뼈 있는 농담을 던지면서 “경찰이 어리석게 대처했다”고 게이츠 2세 편을 들고 나섰지만 “평소 차별받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게이츠 2세가 특권의식으로 백인 경찰의 지시에 순응하지 않고 덤벼들어 사태가 악화됐던 게 아니냐?”고 눈을 흘기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익명을 요구한 케임브리지 경찰 고위 관계자는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이 강도신고에 적절한 절차대로 임무를 수행했다”며 게이츠 2세 교수의 인종차별 주장을 일축했다.
 
하버드 스퀘어에서 시집 읽으면서 관광객들에게 동전을 구걸하는 양키 거지도 피식 웃을 해프닝인 것 같다. 경쟁사회에서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차별은 하느님도 못 말릴 필연이거니와, 게이츠 2세 교수 또한 “어디 경찰관 따위가 감히 하버드 교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사회적 지위 차별을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고, 사회적으로 합의한 룰을 무시한 채 자기 감정을 우선하여 차별 운운한다는 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라는 데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차별받지 않으려면 차별하지 말라는 역설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원본 기사 보기:worldanew.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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