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쿠데타가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교과서?

<뉴욕칼럼> 지저분한 반동분자들

채수경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6/12/01 [02:35]

5.16 쿠데타가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교과서?

<뉴욕칼럼> 지저분한 반동분자들

채수경 칼럼니스트 | 입력 : 2006/12/01 [02:35]

반동(反動)은 본디 물리학 용어다.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작용할 때 그 반작용을 받아서 물체 자신의 운동상태가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게 정치사회학적 용어로 차용된 것은 프랑스 혁명 때, 당시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혁명에 반대했던 왕당파나 노선 갈등으로 등을 돌린 사람들을 반동이라고 했다.
1794년의 ‘테르미도르의 반동’(Reaction Thermidorienne)을 기억할 것이다. ‘테르미도르’는 1793년 10월에 제정된 프랑스 혁명력(革命曆) 중 11번째 달로서 ‘열(熱)의 달’이라는 의미, 자코뱅당 지도자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테르미도르 10일’(서기 1794년 7월 28일)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에 올려 처형했고, 그로 인해 프랑스 혁명은 마침표가 찍혔으며, 이후 총재정부를 거쳐 나폴레옹 제정시대가 열리면서 유럽 전역이 전화에 휩쓸리게 됐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thermidor’는 ‘혁명을 종결시키는 반동’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반동을 보수의 유복자(遺腹子)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반동은 보수와 진보의 사생아, 개혁이나 혁명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성향까지도 포함하는 바, 현재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는 보수와 구별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는 점에서는 진보와 구별된다. 그래서 “전형적인 반동은 반혁명·반진보·반자유 등 모든 면에서 파시즘 성향을 띤다”는 게 정치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의 보수 및 반동 세력이 힘을 합쳐 파쇼독재의 표본 박정희를 무덤 속에서 끄집어내 우상화하고 있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공포정치를 문제 삼았듯이, 한국의 보수와 개혁반동 또한 남북화해정책과 개혁부작용을 문제삼고 있으며, 최근에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어정쩡한 제3의 길을 표방하면서 목청을 높이고 있음을 본다.
 
서울의 반동분자들이 역사의 시계바늘을 되돌리려고 용을 쓰는 것 같다. 군사독재 잔당과 개혁반대 잡탕이 ‘미래지향적 보수’라는 그럴 듯한 기치를 내걸고 결성한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편집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미화하고 유신독재를 “권력 구조적 차원에서 영도적 권한을 지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보장하는 체제인 동시에 행정적 차원에선 국가적 과제 달성을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라고 찬양하여 박정희 시절 들이마셨던 최루탄 가스가 다시 치밀어 구역질 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4.19를 혁명이 아닌 학생운동으로 격하시키고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도 축소하는 한편 전두환 정권을 ‘발전국가를 계승했다’고 주접을 떨었는데,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로 부상한 박정희의 딸 박근혜 쪽에 줄을 대보려는 ‘홀딱쇼’라는 눈총이 파다한 바, 반동치고는 너무 지저분한 개x반동이어서 타임머신이 있다면 모두 실어서 박정희가 손녀 뻘 아가씨들과 술판 벌이다 김재규 총 맞아 횡사했던 궁정동 안가와 전두환 시절의 인간개조공장 삼청교육대로 되돌려보내고 싶다.
 
프랑스 혁명 시대를 살았던 독일철학자 G. W. F 헤겔이 역설했듯이 역사는 정(正)-반(反)-합(合)을 반복하므로 반동의 의의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게 사회발전을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그거야말로 개도 물어가지 않을 역사의 쓰레기다. <채수경 / 재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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