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월드컵 개최지 카타르 확정

FIFA 월드컵 2018년 러시아,2022년 카타르로 확정 발표

이형석 칼럼 | 기사입력 2010/12/05 [08:28]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카타르 확정

FIFA 월드컵 2018년 러시아,2022년 카타르로 확정 발표

이형석 칼럼 | 입력 : 2010/12/05 [08:28]
오늘날 월드컵 개최가 갖는 의미는 분명 축구 그 이상이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06년 대회 개최국 독일은 무려 200만 명에 달하는 해외 관광객을 유치했음은 물론, 총 4억 달러 이상의 ‘월드컵 수익’을 올렸다. 2002년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 및 4강 신화를 통해 국가 위상을 드높인 대한민국 역시 월드컵 특수에 미소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치열한, 더 나아가 그라운드 위의 경기 이상을 방불케 하는 전쟁을 치러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월드컵 개최국 선정의 역사는 곧 축구장 바깥에서 일어난 장외 전쟁의 역사와도 같다.
 
 
유럽과 남미의 자존심 다툼


월드컵은 사실 오랜 기간 동안 세계선수권이 아닌 ‘유럽-남미선수권’에 가까웠던 대회다. 그만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 대륙들의 성장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고, 아직까지도 유럽과 남미 이외의 대륙에서 결승 진출팀이 배출된 사례는 단 한 차례조차 없을 정도다. 특히 1970년대 이전에는 유럽과 남미의 득세가 더욱 심했던 만큼 양 대륙의 신경전도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유럽과 남미의 자존심 다툼은 초대 월드컵 개최국 선정 과정에서부터 사실상 극에 달했다. 1회 대회 개최국이 우루과이로 확정되자 유럽 국가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음은 물론, 대회 참가 신청서조차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남미의 불안한 치안, 3주가량 걸리는 장거리 항해, 그리고 자존심 문제를 내세우며 대거 불참을 선언했고, 결과적으로 프랑스를 비롯한 4개국만이 우루과이 대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월드컵 개최지를 발표중인 조셉 블래터 FIFA 회장
<출처 : Wikipedia (Ricardo Stuckert)>


 


이에 우루과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유럽에서 열린 1934년, 1938년 대회에 연속으로 불참하며 보복을 가한 것이다. 칠레와 페루를 비롯한 다른 남미 국가들도 우루과이의 뒤를 따랐고, 이는 또 다른 강호 아르헨티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1938년 대회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던 아르헨티나는 “1934년 대회가 유럽의 이탈리아에서 열렸으므로 1938년 대회는 당연히 우리 차례” 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피파가 줄 리메 회장의 모국 프랑스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불만을 폭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1938년 대회 불참을 선언했고, 남미 측은 유럽에서 2연속으로 월드컵이 치러진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향후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이러한 논란이 반복되자 피파는 1958년 스웨덴 대회 이후부터 ‘대륙별 로테이션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 유럽과 남미(추후 북중미 포함)가 한 번씩 번갈아가며 월드컵을 개최하도록 제도적 수정을 가해야 했다. 이 로테이션 시스템은 지난 1998년 대회까지 40년 동안 유지됐으며, 아시아의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2002년 대회 이후부터는 제3 대륙에게도 문이 활짝 열렸다. 2002년 대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월드컵이 유럽-남미선수권의 한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셈이다.


 


 

대표적인 논란들


초대 월드컵 이후에도 개최국 선정 과정에서의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에서 열린 1938년 대회는 ‘암묵적인 원칙’으로 적용되고 있던 유럽-남미 순환 시스템을 피파 스스로가 무너뜨린, 가장 대대적인 논란이 일어났던 사례다. 당시 프랑스는 협회의 재정적 어려움 및 경기장 시설 부족으로 인해 개최국으로서의 여건이 좋지 않았던 반면,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최적의 조건을 갖춰놓고 있었다. 그러나 모국에서의 개최를 원하던 줄 리메 회장에 의해 아르헨티나는 고배를 들이켜야 했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12년 만에 재개된 1950년 대회 개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피파는 브라질의 손을 들어줬고, 당시 브라질과의 갈등 관계가 극에 달해 있던 아르헨티나는 결국 50년 대회 출전을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그 후 54년 대회까지 불참한 아르헨티나는 피파 입장에서 ‘미운 오리’와도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1970년 대회 개최국이 아르헨티나가 아닌 멕시코로 확정됐을 때, 일각에서는 피파 측의 악감정이 개입됐다는 소문까지 나돌기도 했다.


 

그만큼 멕시코의 1970년 대회 개최는 예상 밖의 일이었고, 또 그 당시 최대 논란거리였다. 경기장 시설을 비롯한 인프라, 축구 강국으로서의 전통, 월드컵을 향한 열기 등 모든 면에서 아르헨티나가 멕시코에 뒤처질 이유는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피파는 “1968년 올림픽을 개최하는 멕시코가 2년 뒤 월드컵을 개최하기에도 보다 수월할 것” 이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아르헨티나를 외면해 버렸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1962년 대회 당시에도 인프라 면에서 뒤처지는 칠레에 개최권을 내준 경험이 있었던 만큼, 그 동안 억눌러 온 불만을 폭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아르헨티나 이외에도 다른 국가들 역시 멕시코의 승리를 납득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심지어 멕시코 측에서 뇌물을 제공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자 피파는 “유럽과 남미 이외의 대륙에서 월드컵을 개최함으로써 진정한 세계선수권대회로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다” 는 추가 성명까지 발표해야 했다. 또한 피파는 멕시코를 1970년 대회 개최국으로 발표한지 정확히 2년 뒤(1966년), 1978년 대회 개최권을 일찌감치 아르헨티나에 넘겨줌으로써 모든 논란을 무마시켜 버렸다.


 

한편 1982년에는 본래 1986년 대회 개최국으로 예정되어 있던 콜롬비아가 피파 측에 개최권을 반납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심각한 재정난으로 인해 도저히 월드컵을 개최할 수 없다고 판단한 콜롬비아가 고심 끝에 반납 결정을 내리고 만 것이다. 이 시점은 1982년 12월이었고, 다음 대회 개막까지 3년 반밖에 남지 않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대륙별 로테이션 시스템에 의해 남미 혹은 북중미에서 대타 요원을 찾아야 했다는 점도 피파에겐 골칫거리로 작용했다.


 

브라질, 멕시코, 미국, 캐나다가 대타 개최국으로 입후보 한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라질의 무난한 승리를 점쳤다. 50년 대회 이후 30년이 넘도록 월드컵 개최와 인연을 맺지 못해 왔을 뿐 아니라, 인프라, 전통, 경험, 열기 등 모든 면에서 브라질이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질 역시 경제난으로 인해 개최 신청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고,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경험 및 열기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피파는 1970년 대회를 개최했던 멕시코에게 불과 16년 만에 다시 개최권을 넘겨줘야 했다.


 

그 밖에 2002년 월드컵 개최국 선정 과정에서는 사상 최초의 공동개최가 확정, 만만치 않게 큰 논란이 일어났다. 본래 피파는 “월드컵 한 대회는 반드시 한 국가라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는 규정까지 정해놓고 있던 상태였다. 그로 인해 한일 양국의 공동 개최안이 급부상하자 이곳저곳에서 반발이 일어났음은 당연했다. 심지어는 “만약 공동 개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경기 종료 5분을 남겨둔 시점에서 손으로 골을 넣어도 된다고 규칙을 바꿔버리는 꼴” 이라는 비판까지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한일 양국, 그리고 피파의 의견이 공동개최 쪽으로 모아진 이유는 대회 유치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 양상으로 흘러갔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선린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던 한일 양국에게 월드컵 유치전 패배는 감정악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일본은 이 점을 예사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단독 개최를 고집하던 일본은 결국 피파 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뒤늦게 유치 경쟁에 합류한 한국과의 공동 개최안을 수락했다. 실로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공동개최가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대륙별 로테이션 시스템 폐지


한편 피파는 2010년 대회 개최국 발표 직후 ‘6대륙 순환 시스템’을 채택, 월드컵이 진정한 세계축구선수권대회, 더 나아가 세계인의 축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북중미와 같은 제 3 대륙에게 유럽•남미와 동등한 입지를 보장해 줌으로써 세계 축구의 공동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피파 측의 의지 천명이었다.


 

그러나 피파는 2014년 개최국 선정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남미 국가들이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대부분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을 뿐 아니라, 브라질과 유일하게 유치 경쟁을 펼치던 콜롬비아조차 개최 신청을 도중 철회하고 만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공동개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으나, 사정은 결코 여의치 않았다. 브라질이 단독 입후보 끝에 개최국으로 확정되자 피파는 북중미, 오세아니아 등에서 발생하게 될 같은 종류의 문제들을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피파는 2018년 대회부터 대륙별 순환 제도를 다시금 폐지하고, “이전 두 대회를 치른 대륙 이외의 국가들은 누구나 입후보 가능” 이란 새로운 원칙을 내세웠다. 그로 인해 2018년 대회는 2010년 대회가 치러진 아프리카, 2014년 대회가 치러질 예정인 남미를 제외한 모든 대륙의 국가들이 유치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게 됐다.


 


 

대한민국, 2022년 대회 단독 개최 신청


2018년 대회와 2022년 대회 개최국은 오는 12월 11일, 피파에 의해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이미 2022년 대회 유치 신청을 완료했으며, 이 대회는 한일 양국 이외에도 오세아니아의 호주, 중동의 카타르,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 등이 신청서를 제출하며 개최 의지를 천명한 상태다. 반면 유럽에서의 개최가 유력시되는 2018년 대회의 경우 0순위 후보 잉글랜드를 비롯, 스페인-포르투갈(공동), 네덜란드-벨기에(공동), 그리고 러시아가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2002년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던 경험 및 수준급 인프라, 그리고 북한과의 분산 개최를 어필 요소로 내세워 20년 만에 두 번째 월드컵을 단독 개최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북한과의 분산 개최 문제는 정몽준 피파 부회장이 직접 “일부 경기를 북한에서 분산 개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고 언급했을 정도로 점차 현실성이 더해지고 있다. 이 분산 개최안은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다각도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최근 한반도 정세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음을 감안했을 때, 위와 같은 남북 분산 개최안은 피파 측에 기대 이상으로 어필하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반면 호주는 사상 첫 오세아니아에서의 개최를, 카타르는 중동에서의 첫 개최 및 냉방 경기장을 비롯한 최첨단 시설을, 그리고 미국은 가장 큰 규모의 수익이 기대되는 시장성을 제각각 어필 요소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3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2018년 월드컵과 20022년 월드컵 개최지 결정투표 내용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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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석 / <사커라인> 칼럼니스트
글쓴이 이형석은 국내 최대 규모 해외축구 전문 사이트인 <사커라인>(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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