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이명박의 영남시리즈 오픈

<공희준 칼럼> 영남 1진과 2진 간의 대결엔 승자와 패자가 없다

뉴민주닷컴 | 기사입력 2007/05/25 [14:46]

노무현과 이명박의 영남시리즈 오픈

<공희준 칼럼> 영남 1진과 2진 간의 대결엔 승자와 패자가 없다

뉴민주닷컴 | 입력 : 2007/05/25 [14:46]

2007년에 벌어진 다양한 사건들 중에서 노무현 정권을 가장 흡족하게 만든 일은 뭐였을까? 아마도 금년도 한국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이었을 게다. 같은 경상도에, 그것도 PK에 연고지를 둔 두 팀이 나란히 결승전에 진출한 것이다. 좀 늦은 감이 있음에도 경기결과를 소개하겠다. 정규리그 1위로 챔피언 시리즈에 직행한 울산 모비스가 플레이오프를 거쳐 결승에 올라온 부산 KTF를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4승 3패로 누르고 우승트로피를 차지했다.

 

부산이 울산마저 꺾었더라면 더욱 환상의 시나리오겠으나 여하튼 영남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팀이 우승컵을 안았으니 이 정도면 바람직한 모양새다. 청와대가 꿈꾸는 최상의 대선구도가 스포츠의 장을 빌려 펼쳐진 셈이다. 가을에 시즌이 새롭게 시작되면 KBL을 벤치마킹한답시고 영남친노들이 농구경기장으로 대거 몰려들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이참에 경상도 노빠들이 농구장에 아예 눌러앉았으면 좋겠다. 그게 나라와 국민 위하는 길이다.

 

기왕 농구이야기가 나온 마당에 몇 마디 추가로 보태련다. 미국을 비롯해 각국의 프로농구에는 Garbage Time이란 용어가 통용된다. 이미 승부의 추가 완전히 기울어진 터라 무슨 수를 써도 승패를 뒤집을 수 없는 때를 말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관련내용을 옮겨보겠다. “보통 주전은 다 빠지고 허접한 후보만 들어와 경기장 분위기도 모르고 천방지축 뛰어다닙니다. 아무리 맹활약해봐야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썰렁한 상황입니다. 운동장 청소하는 분들은 벌써 작업을 개시합니다. 관중은 거의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그래서 쓰레기시간입니다.” 영남친노는 노무현을 4쿼터의 사나이라고 칭송하며 모종의 역전카드가 있을 거라 기대하는 눈치다. 어떡하나? 객관적으로 그는 4쿼터의 사나이가 아니다. Garbage Time의 제왕이다.

 

경기종료시간이 1~2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점수는 20점 차이. 코트에는 양팀 모두 주전선수들 대신 평소 출장하지 않던 벤치워머들만 기용돼 있다. 우리의 노무현 선수, 베스트멤버들 틈에서는 선보이지 못했던 현란한 개인기를 맘껏 과시한다. 절묘한 더블 클러치에, 장거리 3점포에, 마이클 조던을 연상시키는 전설의 페이드 어웨이까지. 물론 아무도 막지 않는다. 좀체 관중의 이목이 쏠리지 않자 마침내 분노의 덩크슛을 폭발시킨다. 자유투 라인에서 새처럼 날아올라 호쾌한 원핸드 슬램덩크를 골대에 터뜨린다. 체육관을 떠나려던 관중들, 목청을 높여 야유를 퍼붓는다. 노무현이 주책없이, 혹은 홧김에 자기편 림으로 덩크를 꽂아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듯하다. 이제는 손호철 교수조차 친노세력은 대통령 선거에 저희들의 독자후보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마시킬 것이라고 예상한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염원은 ‘가을에도 야구하자’다. 영남친노들의 소망 또한 마찬가지다. ‘가을에도 정치하자!’ 가을에도 정치를 하려면 페넌트레이스에서 순위권에 드는 성적을 거둬야만 옳다. 이 자명한 이치를 노무현 정권과 영남친노들만 줄곧 외면하고 있다. 정규리그 성적에 관계없이 본인들한테 무조건 결승전 진출티켓을 달라는 거다.

 

순위와 무관하게 닥치고 결승티켓. 현재 지구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수많은 종목과 리그에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기운영제도다. 역시 대단한 노무현이다. 세계스포츠 역사에 새로운 장을 쓰고 있다. 오늘도 노무현이 또 이겼다! ‘가을에도 정치하자’는 노무현 정권과 영남친노의 외침은 ‘닥치고 결승티켓’이란 괴상망측한 요구로 연결된다. 기량과 상관없이 결승행 티켓이 보장된다면 정정당당히 실력으로 경쟁하고 경기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정상적인 스포츠시합이 아니다. 한낱 야바위에 불과하다.

 

‘닥치고 결승티켓’의 정치적 표현이 ‘닥치고 영남후보’다. 한나라당 소속선수와 결승전에서 자웅을 겨룰 진보개혁진영의 간판선수는 오직 영남후보뿐이라는 소리다. 결승전에 나가는 영남후보에게 폭넓은 유권자의 지지와 시대정신을 구현할 자질과 역량이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결승전 티켓이다. 챔피언 시리즈에서 한나라당 선수에게 4연패로 무참하게 스윕(Sweep)을 당해도 괜찮다. 영남후보에게 결승티켓만 주어지면 장땡이다.

 

삼척동자가 봐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는 몰상식한 떼쓰기를 노무현 정권과 영남친노들이 고집하는 까닭은 뭘까?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내보내지 못하는 정당과 정파는 정치권에서 조만간 사라질 운명임을 그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대선에 영남후보가 출전하지 못하면 내년 총선도 기약하기 힘들다. JP가 연거푸 대권도전을 포기한 탓에 자민련이 공중분해되었음을 유의하시라.

 

그렇다. 노무현 정권과 영남친노는 올해 가을과 겨울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꼭 선거를 해야 한다. 그때 ‘자신들의’ 선거를 치러야만 차기총선이 예정된 2008년 봄에도 의욕과 희망을 품고서 선거전에 임할 수가 있다. 정규리그 꼴찌로 확정된 건 어쩔 수 없지만 관중석에서 결승전을 구경하는 수모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할 처지다. 한나라당에게 이른바 떡실신과 캐관광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챔피언 결정전에 기필코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정청래는 유시민이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질 확률이 99.9퍼센트라고 관측했다. 그는 여전히 0.1%의 자투리를 남겼다. 허나 노무현 정권과 영남친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생존하려면, 영남지역에 지속 가능한 교두보를 구축하자면 요번 대선에서 자파후보를 출마시키는 정치기동이 필수적이다. 노무현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영남후보가 17대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할 가능성은 문자 그대로 100퍼센트다.

 

그럼 어찌해서 노무현의 영남시리즈가 아닌 노명박의 영남시리즈일까? 범여권 대표선수로 경상도 출신의 보수정치인이 등장하는 대결구도는 노무현에 더하여 상대방인 이명박도 춤추게 한다. 어차피 똑같은 보수정객 가운데 골라야 한다면 노무현 계보의 무능한 보수보다야 이명박이 자랑하는 유능한 보수 브랜드가 단연 낫지 않겠나?

 

부도덕한 메이저 영남보수 대 무능력한 마이너 영남보수의 전선형성을 통한 이명박 퍼주기는 노무현의 뒤틀린, 노무현 스스로의 자화자찬으로는 유연한 사고가 빚어낸 산물이다. 가치와 노선이 관건이라는 그의 주장을 일단 인정하고 들어가기로 하자. 가치와 노선을 대의 내지 개혁성향이라고 해석해도 올바르다. 그는 가치와 노선이 그릇되고 대의에 어긋난다는 구실로 고건, 정운찬, 손학규, 김근태, 정동영, 천정배 등의 비영남권 대선주자를 배척했다.

 

정말 웃긴 대목은 그런 노무현이 영남후보들만 남자마자 돌연 태도를 바꿔 대의가 아닌 대세를 추종한다는 데 있다. 대의를 잣대로 비영남지방 인사들을 방출한 다음 경상도 태생의 인물들만 구단에 잔류하니까 잽싸게 대세, 즉 현실적 득표력을 대권후보의 기준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노무현이 선호하는 영남권 후보자 중에 가치와 노선에 기초해 판단한다면 김혁규가 제일 먼저 아웃이다. 한데 실상은 정반대다. 대의와 개혁성에 그나마 어울리는 김두관은 처량한 계륵신세고, 도리어 김혁규가 영남후보들 사이에서의 축소판 대세론을 앞세워 노심(盧心)의 후견과 친노직계의 지원을 확보한 형국이다.

 

페넌트레이스 1위를 질주하는 이명박은 여간 행복한 게 아니다. 정규리그 최하위가 기상천외의 엽기적 대진방식으로 결승전에 오를 테니까. 챔프전에 무임승차한 꼴찌팀은 더구나 순전히 올림픽 정신으로만 무장한 상태다.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의의가 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

이명박 입장에서 최악의 무시무시한 사태는 선수들의 불화로 팀웍이 흐트러진 정규리그 2위나 3위팀이 재정비(Rebuilding)에 성공하는 경우다. 그래도 이명박은 믿는 구석이 있기에 마음이 든든하다. 꼴찌팀 감독과 선수들이 온갖 더러운 반칙과 별의별 더티 플레이를 동원해 선두팀 이외의 정규리그 상위팀 주전선수들을 줄줄이 부상시키고 있으므로.

 

이명박과 노무현은 영남 1진과 영남 2진이 결승에서 평화롭게 격돌하는 그들만의 친선게임으로 2007 대통령 선거의 방향을 유도함으로써 완벽한 Win-Win 효과를 만끽하고 있다. 네 편 내 편이 따로 없는 영남시리즈 덕택에 이명박은 17대 대선에서 확실하게 승리해 손가락에 챔피언 반지를 낄 수가 있다. 경상도 B급 인재끼리 정권을 주고받는 영남시리즈는 노무현에게 그가 거느린 함량미달 선수들의 선수생명을 4년 더 연장할 기회를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공한다. 승자와 패자가 다정하게 파안대소할 영남시리즈의 진정한 패배자는 당연히 국민으로 기록되리라. 

 

<공희준 / 빅뉴스 칼럼니스트>

 

[중도개혁 통합의 힘 뉴민주닷컴 http://newminjoo.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추천칼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