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관점에서 본 최규하 대통령

<뉴욕 칼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과 구분

채수경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6/10/24 [01:58]

민주주의 관점에서 본 최규하 대통령

<뉴욕 칼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과 구분

채수경 칼럼니스트 | 입력 : 2006/10/24 [01:58]

한국인들이 잘 아는 척 하면서도 잘 모르고 있는 것들 중의 하나가 ‘대통령’과 ‘프레지던트’의 차이다. ‘president’의 어근 ‘preside’의 어원은 ‘먼저’라는 의미의 접두사 ‘prae-’와 ‘앉다’라는 의미의 ‘sedere’가 합쳐져 생겨난 라틴어 ‘praesidere’, 회의를 할 때 높은 사람이 먼저 앉았으므로 ‘주재하다’라는 의미가 추가됐고 그게 변해 ‘통치자’라는 의미의 ‘president’가 됐다.
어원만 생각하면 ‘president’를 ‘대통령’(大統領)이라고 번역했다고 해서 이의를 달 수 없으나, 국민이 선출한 대표를 ‘통치자’로 떠받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거니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나라의 지도자는 ‘통치자’가 아니라 ‘나랏일을 논의하는 토론장의 주재자’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president’라는 명칭을 사용한 줄도 모른 채, ‘president’를 ‘大統領’이라고 번역했던 일본인들의 무지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점에서 조롱 받아 마땅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공산독재 체제인 중국과 북한의 ‘주석’(主席)이 ‘president’와 딱 맞아떨어지는 용어여서 실소가 머금어지기도 한다.
 
 
‘대통령’이라는 말 자체가 민주주의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단어다. 실 사(絲)와 찰 충(充)이 합쳐진 큰 줄기 통(統)은 명주실을 여러 가닥 모아 한 가닥의 튼튼한 실을 꼬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서 ‘작은 갈래를 모아 하나의 큰 줄기를 만들다’라는 의미였고, 산뜻할 령(令)과 머리 혈(頁)이 합쳐진 옷깃 령(領)은 ‘고개를 끄덕이고 받아들이다’라는 의미였으나 후에 ‘영(令)을 내리는 머리(頁)’ 즉 ‘우두머리’라는 의미로도 쓰이게 됐다.
그래서 조선시대 조운선 10척을 거느리는 우두머리를 ‘통령’이라고 했으나, 일본 막부 말기 미국과 접촉하면서 과거 사무라이 우두머리를 ‘統領’이라고 불렀던 데 착안하여 ‘大統領’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는 주장도 있고, 동학 농민군을 지휘했던 손병희가 ‘통령’을 자처했던 데서 보듯 중국의 군대 직제에서 따온 말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국민이 뽑은 대표를 ‘대통령’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아직도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면 틀림이 없다.
 
 
종신 대통령을 꿈꾸던 독재자 박정희가 딸 같은 아가씨들과 술판을 벌이다가 부하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비명횡사한 후 엉겁결에 제10대 대통령이 됐으나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밀려 8개월만에 사퇴했던 최규하 전 대통령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다.
대통령직 사임 후 자의반 타의반 25년도 넘게 은둔의 삶을 살았던 최 전 대통령에 대해 ‘신군부 부역자’ ‘엉큼한 새가슴’ ‘입에 자물통을 단 최고집’ 등등의 조롱이 따라붙고 있지만, 정치적 평가를 제외하고 민주주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과는 달리 민주주의 대통령 원형에 가까웠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지 못한다.
국부(國父)를 자처하며 종신 대통령을 꿈꾸지도 않았고, 총칼로 국민들을 윽박지르지도 않았으며, 본인이 무능력했는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 몰라도 국민들을 통치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그 ‘무능력’이야말로 최 전 대통령의 덕목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통령이 국민을 모셔야지 국민이 대통령을 모시는 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이제는 현직 대통령을 ‘개구리’라고 부르고 있으므로 ‘대통령’이라는 말도 폐기하기 바란다. <재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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