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칼럼> ‘안 짖은 개’와 ‘짖는 개’

도둑 도망가고 나서 짖는 개들을 본다

채수경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6/09/01 [15:25]

<뉴욕칼럼> ‘안 짖은 개’와 ‘짖는 개’

도둑 도망가고 나서 짖는 개들을 본다

채수경 칼럼니스트 | 입력 : 2006/09/01 [15:25]


개견(犬)은 개가 옆으로 서 있는 모양을 본뜬 것, 흔히 ‘개xx’라는 욕을 한자로 쓴답시고 ‘견자’(犬子) 운운하지만 사실은 ‘구’(狗) 한 글자로 족하다. 쌀 포( ) 속에 입 구(口)가 들어 있는 ‘句’는 본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안에서 돌리다 끊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서 동물 옆에 붙으면 ‘어린 것’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말(馬) 옆에 붙으면 망아지 구(駒)이고 개 옆에 붙은 게 강아지 구(狗), ‘개xx’ 또한 ‘犬子’가 아닌 ‘狗’라고 하는 게 옳다.

그래서 자고로 큰 개는 ‘犬’이라고 하고 작은 개는 ‘狗’라고 해왔지만 쓰임새가 달라서 좋은 의미에는 ‘犬’을 쓰고 나쁜 의미에는 ‘狗’를 쓴다. ‘애견’(愛犬)이라는 말은 사용해도 ‘애구’(愛狗)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으며 ‘주구’(走狗)는 욕이지만 경주견(競走犬)은 욕이 아니다. 보신탕 끓여먹을 때도 털 색깔이 x색과 비슷하여 x개라고 불렸던 황구(黃狗)를 첫손가락으로 꼽는다는 것을 보신탕 좋아하는 사람들은 잘 안다.
 
‘개xx’보다도 심한 욕이 ‘개xx만도 못한 놈’이다. 그래서 “개xx에게도 오륜은 있다”라는 냉소도 생겨났다. 새끼가 아비의 털 색깔을 닮는 모색상사(毛色相似)는 부자유친(父子有親), 주인을 알고 짖지 않는 지주불폐(知主不吠)는 군신유의(君臣有義), 새끼를 배면 수컷을 멀리하는 잉후원부(孕後遠夫)는 부부유별(夫婦有別), 작은 개는 큰 개에게 덤비지 않는 소불적대(小不敵大)는 장유유서(長幼有序),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 개가 함께 짖는 일폐중폐(一吠衆吠)는 붕우유신(朋友有信)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개xx만도 못한 놈’들이 얼마나 많았기에 그런 견공오륜이 인구에 회자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사행성 성인오락게임 ‘바다이야기’ 파문이 날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도둑 맞으려니까 개도 안 짖는다더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도록 몰랐는지...”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지자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개는 2004년부터 짖었다”고 받아침으로써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분명히 개 짖는 소리가 있었고 세상 사람들은 다 아는데 노 대통령만 몰랐다면 청력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주위에 ‘인의 장막’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아냥거렸고 열린우리당 이규의 부대변인은 “짖으려던 개에 재갈을 물린 것은 바로 한나라당 아니냐? 시급한 민생법안을 볼모로 잡고 사학법 대치정국을 만든 곳, 오락실게임개발협회로부터 1억원의 협찬을 받은 곳, 스크린경마업주협회 비용으로 게임박람회를 갔다 온 곳이 어디냐?”고 반박했다.
 
한심하다. 전 국토가 도박장으로 변해버렸는데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안 짖은 개’나 탓한 대통령의 말투와 사태인식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안 짖은 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짖는 개’가 되어 ‘일폐군폐’의 모범이나 보이고 있음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도둑 도망가고 나서 짖는 개들을 보는 듯하다. 무능할수록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조롱한 일본 속담 “무능한 개는 낮에 짖는다”가 절로 떠올려진다. ‘犬’에 말씀 언(言)을 붙이면 으르렁거릴 은( ), 그 오른쪽에 ‘犬’을 덧붙이면 개 두 마리가 으르렁거리듯 말싸움을 하는 옥(獄), 모두 옥에 가둬야 정신을 차리려나?! <재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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