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바늘구멍 통과

<뉴욕칼럼>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사회

채수경 | 기사입력 2009/12/31 [13:30]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바늘구멍 통과

<뉴욕칼럼>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사회

채수경 | 입력 : 2009/12/31 [13:30]
예수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했었다. 낙타와 바늘귀? 비유의 고갱이는 유추이건만 낙타와 바늘귀의 유사성은 뭔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사람들이 이런 저런 문헌 뒤적거린 결과 찾아낸 게 ‘밧줄’이었다. 그들은 그리스어 고사본에는 ‘kamelos(낙타)’가 아닌 ‘kamilos(밧줄)’이라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어 성경 사본을 번역하던 중 번역자가 ‘gamta(밧줄)’을 ‘gamla(낙타)’로 착각하여 잘못 번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반론이 있으면 그에 대한 또 다른 반론이 나오기 마련, 어떤 사람들은 예루살렘처럼 성곽을 두르고 있는 도시에는 낮에 사람들이나 짐수레 등이 드나드는 ‘큰 문’과 ‘큰 문’이 닫히는 밤에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그 ‘작은 문’은 사람이 허리를 편 채로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아 ‘바늘귀 문’으로 불렸던 바,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가장 큰 짐승이었던 낙타가 바늘귀문을 통과하는 게 쉽다고 말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왜 부자가 천국 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을까? 마태복음 19장 16절부터 24절까지를 다시 읽어보자. 계명을 다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영생을 얻는 방법은 찾지 못한 청년에게 예수가 “네가 가진 것들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좇으라”고 말하자 재물이 많았던 청년이 근심을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난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기서 ‘재물’은 물질적 가치, ‘나’ 즉 예수는 정신적 가치,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정신적 만족 즉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쯤은 교회 문 턱 한 번 안 밟아본 사람들도 겪어서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방어리이행 다원(放於利而行 多怨), 일찍이 공자도 “리(利)를 쫓아다니면 원(怨)이 많다”고 충고했었다. ‘利’는 익어서 고개 숙인 나락을 그린 벼 화(禾)에 칼 도(刀)가 붙은 것이고 ‘怨’은 누워 뒹굴 원(夗) 아래 마음 심(心)이 붙은 것, 이득을 위해 휘두르는 칼에 상처 입은 사람들은 잠자리에 누워 뒹굴 때마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원망하게 된다는 관찰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거려진다.
 
그러나 공자나 예수나 한 가지는 몰랐던 것 같다. 물질적 가치가 정신적 가치를 압도하는 사회에서 낙타가 바늘귀문을 통과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어떻게? 문을 부수면 된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門)은 규범과 도덕과 양심의 상징, 돈으로 못할 게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요즘 세상에서 그 문을 부수면 낙타가 아니라 공룡도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누구라서 부인하랴.
실제로 물질주의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 ‘rich’의 뿌리 또한 ‘왕’을 의미하는 켈트어 ‘rig’에서 ‘전능한’ ‘통치자’를 의미하는 고트어 ‘reiki’가 나왔고 그게 ‘많다’ ‘부유하다’라는 의미의 고대 고지독일어 ‘rihhi’로 변했다가 영어 ‘rich’로 굳어진 것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 낙타가 보란 듯이 바늘귀문을 통과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영권 편법승계와 관련 조세포탈 및 배임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 100억원을 선고받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불과 4개월만에 사면 복권시켜줬다. 명분은 경제 살리기와 동계 올림픽 유치, 어떻게 해서든 경제를 살려 국민들 잘 먹고 잘 살게 해줘야겠다는 이 대통령의 충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번 결정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더욱 더 물질주의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아닌가 하여 걱정을 금할 수 없다.
탈세든 범법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모으면 특별한 대접과 존경을 받는 천박한 풍토 조성에 기독교 장로 출신 대통령이 앞장서는 것 같아 떨떠름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삼성측의 강력 부인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행정부처 이전 무효화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정권측이 시장통 장사를 하듯 삼성 계열사 세종시 이전과 사면을 맞바꾸는 빅딜을 했다는 설까지 나돌아 덤으로 눈이 흘겨지기도 한다.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더 높이 사는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원(怨)이 많을 것 같다. 그 원(怨)은 누가 사면·복권시켜주나?
<채수경 / 뉴욕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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