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뜨는 것은 새롭게 보기 때문이다

<뉴욕칼럼> 탁거구견 이래신의(濯去舊見 以來新意)

채수경 | 기사입력 2010/01/01 [13:22]

새해가 뜨는 것은 새롭게 보기 때문이다

<뉴욕칼럼> 탁거구견 이래신의(濯去舊見 以來新意)

채수경 | 입력 : 2010/01/01 [13:22]
2010년 1월 1일, 새해가 시작됐다. 약 45억년전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구 땅덩어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하게 365와 1/4일, 그 시간을 주기로 지금까지 45억 바퀴를 돌았듯이 또 한 번 돌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고 떠들어대기가 쑥스럽다.
뭐가 새로운가? 한자 신(新)은 묵형을 가할 때 쓰던 칼을 그린 매울 신(辛)과 나무 목(木)과 도끼 근(斤)이 합쳐진 것으로서 본래 의미는 ‘나무를 베어 땔감을 마련하는 것’, 그게 ‘새롭다’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나무가 나무로 서 있을 때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지만 그걸 도끼로 찍어 장작으로 만들면 쓰임새가 새로 생겨나기에 ‘새롭다’라는 의미로 쓰이게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 앞으로 주어지는 365와 1/4일 또한 새롭게 쓰지 않으면 ‘새해’가 아니라는 데 토를 달지 못한다. 영어 ‘new’ 또한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나 새로이 인식한다는 의미다.
 
어떻게 하면 2010년의 장작을 잘 패서 새 밥을 지을 것인지 부담감이 가마솥 뚜껑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건네는 것도 겸연쩍기는 마찬가지다. 왜? 기실 그런 눈 먼 복이 있다면 나 먼저 받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으니까. 근하신년(謹賀新年)의 하(賀)도 그 점을 잘 말해준다. 하(賀)는 더할 가(加) 아래 그 옛날 돈을 뜻하는 조개 패(貝)가 붙은 것으로서 남에게 돈을 보태주는 것을 말한다.

입에 돈 돈 돈을 달고 사는 처지에 남에게 나눠줄 돈도 없거니와, 99개를 가지면 1개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100개를 채우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인간 세상에서 내 돈을 남에게 나눠준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바, 말로만의 ‘근하신년’이야말로 말 그대로 말로 떡 하는 게 아닌가?! 몇 해 전 ‘새해에는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가 크게 유행했었지만 제로섬 게임이 판치는 이익사회에서 나의 이익은 너의 손해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모두가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건 코흘리개들도 다 아는 상식, 올해 정초에는 ‘복 많이 받으라’나 ‘근하신년’보다는 ‘마음 편하게 먹고 평안하게 살자’는 덕담을 건네고 싶다. 
 
한국의 교수신문이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지식인 2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010년 새해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강구연월(康衢煙月)’을 선정했다. ‘강구연월’은 민심을 살펴보기 위해 미복차림으로 거리에 나간 요 임금이 아이들이 “우리 백성을 잘 살게 해주심은 임금의 지극한 덕”이라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 그걸 추천한 단국대 김상홍 한문학 교수는 “지도층은 요임금처럼 국민에게 강구연월의 세상을 만들어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새해에는 분열과 갈등이 해소되고 강구연월의 시대가 열리길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저마다의 노력으로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해야할 민주주의 시대에 대통령이 뭔가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백성들이 아직도 부지기수이고 분열과 갈등의 당사자들이 남 탓 하는 것 같아 꿀밤을 쥐어박고 싶다.
4대강 삽질이나 세종시 문제 등등의 갈등이 정치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움직여 이익을 취하려는 국민 개개인의 문제이건만 자신과 무관한 듯 말하는 뻔뻔함이 너무 두껍다.
 
청와대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일로영일(一勞永逸)’도 뻔뻔하기는 마찬가지, 청와대는 “재임 중 각고의 헌신을 다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다음 정부와 다음 세대에 선진일류국가를 물려주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각오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그런 작업은 정부나 대통령이 하는 게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하는 것임을 모르는 것 같아 눈이 흘겨진다.
공복(公僕)인 대통령이 나라의 주인 행세를 하는 나라는 절대 선진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깨우쳐줘야할지 모르겠다. 
 
탁거구견 이래신의(濯去舊見 以來新意), 옛날의 생각을 씻어버려야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고 했다. ‘나’가 새로워져야 세상이 새로워진다. 지금 이 지구 땅덩어리 또한 지난 45억년간 돌았던 그 궤적을 따라 다시 돌고 있을 뿐, 새로운 해가 뜨는 게 아니라 내가 새롭게 보기 때문에 새로워진다는 것을 까먹지 말자.  <채수경 / 뉴욕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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