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 지킨 박준영 을지병원장 훈장 받아야

국민영웅 김일선수 13년 지킨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은 의인이다

김환태 | 기사입력 2006/11/13 [15:28]

김일 지킨 박준영 을지병원장 훈장 받아야

국민영웅 김일선수 13년 지킨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은 의인이다

김환태 | 입력 : 2006/11/13 [15:28]

국민에게 힘과 용기준 박치기왕 김일
 
 보릿고개를 힘들게 오르던 1960~70년대 가난한 시절,통쾌한 박치기 한방으로 삶에 찌들어 심신이 지쳐있던 국민들에게 시름을 잊게 해주었던 한국 프로레슬링의 제왕 김일선수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10월26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영면하였다. 박치기왕 김일선수가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그의 경기가 있는날이면 온동네 사람들이 동네에 몇대 안되는 흑백 텔레비전 앞에 모여앉아 김일선수가 세계적인 프로레슬링 선수들을 박치기로 케이오 시키는 모습을 보고 열광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당시 텔레비전이 없어 김일선수의 경기모습을 볼 수 없었던 시골 산골마을 사람들도 김일선수의 이름만큼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김일선수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 국민 모두로 부터 사랑받는 국민적 영웅이었다. 김일선수가 1963년 세계 프로레슬링 협회 세계 태그챔피언에 오른이래,1964년 북아메리카 태그챔피언,1965년 서울 극동헤비급, 1966년 올아시아 태그챔피언, 1967년 23대 세계헤비급 챔피언, 1972년 인터네셔널 세계헤비급 태그챔피언 벨트를 획득하면서 절대 영웅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게되기까지는 김일선수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김일선수는 1929년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라는 섬마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였던 그는 184센티미터의 우람한 체격을 이용하여 각종 씨름대회를 휩쓸었을 만큼 이름난 씨름꾼이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인 열여섯살에 결혼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던 김일선수가 레슬링에 입문하게된 계기는 일본잡지에 실린 프로레슬링 세계챔피언 역도산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면서였다.
 
 역도산과 같은 프로레슬러가 되어야 겠다고 결심한 그는 1956년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불법 밀항자로 붙잡혀 1년동안 형무소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꿈을 버리지 않고 역도산에게 여러차례 구원편지를 썼고 이에 감동한 역도산이 신원보증을 하여 구출해내 제자로 삼았다. 김일은 안토니오 이노키,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역도산 문하에서 피나는 훈련을 쌓았다.
 
  역도산은 김일을 박치기왕으로 만들겠다는 목표아래 새끼줄을 감은 기둥에 매일 수백번씩 이마를 박게 하거나 직접 골프채나 재떨이로 이마를 때리는 훈련으로 이마를 단련시키는 바람에 정신을 잃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운동에 전념한 결과 30년동안 3000여차례의 경기에 출전, 20차례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는 프로레슬링의 제왕이자 국민적 영웅으로 우뚝서게 되었던 것이다.
 
  1982년 아수라 하라와의 경기를 끝으로 은퇴한 이후 사업실패와 박치기의 후유증으로 인한 뇌혈관 질환,임파부종,고혈압등 병마와 싸우며 15년동안 힘든 말년을 보내다 세상을 떳지만 모든 국민은 떠나는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며 명복을 빌었다. 국민에게 힘과 용기,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던 그의 공로를 기려 1999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2000년에는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하였던 정부도 고인의 영전에 체육훈장 청룡장을 추서하여 떠나는 영웅에 대한 예우를 다하였다.
 
김일선수 13년 모신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의 인간애
 
  김일선수의 영면을 계기로 우리 국민이 감사해야하고 숭고한 의인정신을 잊어서는 안될 또 한사람의 영웅이 있다. 다른사람이 아닌 국민적 영웅 김일선수가 마지막 13년의 인생을 편안하게 지내시다 가실 수 있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여 치료하고 생활을 뒷바라지 해온 을지병원 박준영(47)이사장이다.
 
   박 이사장은 1994년 김일선수가 일본 후쿠오카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으로부터 듣고 국민적 영웅을 조국이 아닌 일본에서 비참하게 계시도록 하는건 국민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곧장 의사와 간호사를 대동하고 일본현지로 떠났다고 한다. 일본현지에 도착하여 김일선수의 건강상태를 보니 목디스크를 앓는데다 하지 정맥류 증세로 왼쪽다리가 배처럼 부어 거동을 하지못한 상태에서 정신까지 멍한 상태였다 한다.
 
 박 이사장은 반신반의하는 김일선수에게 "저는 한번 약속하면 지키는 사람이니까 가십시다. 제가 모시겠습니다"며 간곡히 설득하여 모시고와 자신이 경영하는 을지병원에 입원시켜 병실하나를 따로 살림방으로 바꾸어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한 상태에서 의료진을 동원,당뇨병,고혈압,하지부종등 각종 질병을 무료로 정성껏 치료하는등 극진하게 보살폈다.
 
  이러한 박준영 이사장의 도움으로 건강을 빠르게 회복한 김일선수는 그후 후배양성과 레슬링 재건사업을 전개하는등 보람된 말년을 보낼 수 있었다. 박 이사장은 13년동안 김일선수를 보살핀것은 자신이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것 뿐이며 오히려 자신이 김일선수에게 많은것을 배웠다고 겸손해 했다.
 
  박준영 이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일선수를 통해 사나이의 의리가 무엇이라는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김일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에 키우던 진돗개를 일본군인이 빼앗으려 하자 차라리 빼앗기느니 주는게 낫다 싶어 기증을 했는데 그 죄책감을 평생 잊지못해 고향에 '개동상'을 세워주실 만큼 의리가 강한 분이셨다'고 했다.
 
  박준영 이사장은 그러면서 "국가적으로 국민의 자존심을 살려준 분들이 말년에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원로 체육인 마을'같은 제도적 장치를 만들면 좋겠다"며 자신이 비록 김일선수를 모셨지만 천하의 김일선수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고 하였다.
 
박준영이사장의 헌신에 대해 정부는 훈장수여를
 
  요즈음을 기리켜 흔히 인간성 상실시대라고 한다.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다보니 부모형제간의 인간적 관계마저 이해관계로 전락하면서 돈과 관련,부모에게 패륜을 서슴지 않고 부모를 모시지 않겠다며 서로 떠밀고, 기어이 양로원등 요양시설에 유기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게 오늘날 사회다.
 
 자신의 친부모도 모시지 않으려는 요즈음 김일선수와는 혈연관계는 물론 아무런 연고도 없으면서 무려 13년간을 온갖 정성을 다해 모셨다는건 대단한 각오와 성의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비록 박준영 이사장이 대형병원을 소유한 경영인으로서 그럴만한 여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보통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마트면 국민적 영웅을 외국 타지에서 불행하게 살다 세상을 뜨게 만들어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를 깎아내리고 국민들이 고개를 들 수 없게되는 상황을 맞았을 수 있었을 터인데 박준영 이사장의 결단과 성심을 다한 헌신으로 마음편히 떠나게 된 김일선수를 국가와 국민이 기리고 명복을 빌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장한 일인가.
 
  우리국민 모두는 13년동안 김일선수에게 쏟은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의 헌신적 노고에 감사하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박치기왕 김일선수가 국민적 영웅이었다면 김일선수를 극진히 보살펴 의리와 동방예의지국 한국인의 자존심을 살려준 박준영 이사장도 국민적 영웅이다. 박준영 이사장의 감동적인 헌신을 높이 기리고 사회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정부는 훈장을 수여하여 박준영 이사장의 고귀한 인간애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박준영 이사장이 무슨 대가를 바라거나 포상을 염두에 두고 김일선수를 모신것은 아니지만 그의 노고를 외면한다면 이는 국가와 국민의 도리가 아니다. 박준영 이사장의 헌신에 걸맞는 정부의 예우가 있길 촉구하면서 거듭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의 헌신적 인간애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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