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칼럼> 박정희가 노무현보다 낫다?

대통령도 맘대로 비판할 수 있는 세상 어느 시대?

채수경 | 기사입력 2006/09/02 [17:17]

<뉴욕칼럼> 박정희가 노무현보다 낫다?

대통령도 맘대로 비판할 수 있는 세상 어느 시대?

채수경 | 입력 : 2006/09/02 [17:17]

박정희가 노무현보다 낫다?
이게 큰가 저게 큰가? 이게 좋으냐 저게 좋으냐?...두 가지 이상의 대상을 여러 관점에서 관찰하여 유사성·동일성 및 차이를 밝히는 것을 ‘비교’(比較)라고 한다.
견줄 비(比)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의 ‘人人’이 변해서 만들어진 것, 수레 거(車)와 사귈 교(交)가 붙은 견줄 교(較)는 원래 수레 좌우의 널빤지 위에 댄 가로나무의 앞으로 고부라져 나온 부분으로서 수레 안에서 서 있을 때 잡는 곳을 가리키는 차이(車耳) 각(較)이었는데, 그게 수레 위 상자처럼 된 부분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가, 그것의 크기로 수레의 크기를 견주면서 ‘견주다’라는 의미도 생겨났다. 영어 ‘comparison’의 어원은 ‘짝짓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comparare’, 함께(com-) 비슷하거나 동등한 것(pair)을 찾는 것을 말한다. 한자문화권의 ‘비교’가 같은 성질의 것들 사이의 우월성을 따지는 것인 반면 영어 문화권의 ‘comparison’은 유사성·동질성을 확인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生)철학으로 유명한 독일의 W. 딜타이는 “여러 세계관의 유형화와 그것들의 전개·교착을 이해하는데 비교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었지만 지난 2002년 4월 102세의 나이로 타계한 독일 철학자 H. G. 가다머는 1960년에 펴낸 그의 명저 ‘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에서 “비교의 본질은 주관적 인식의 비속박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경계했었다. 즉 비교 주관자의 인식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다머 등이 지평을 개척한 철학적 해석학에서는 “비교는 독자적인 정신과학의 역사성을 약화시킨다”고 폄하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아가씨들과 니나노 술판을 벌이다가 측근 김재규가 쏜 총탄을 맞고 사망한 다음날 그 사실을 처음 공식 발표했던 김성진 전 문화공보부 장관이 ‘박정희를 말하다’라는 책을 펴내면서 “반(反) 민주적이라고 비판받으면서 중산층을 강화한 박정희와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중산층을 무너뜨린 노무현 중 어느 쪽이 진정 민주주의에 이바지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어처구니없는 궤변, 주관적 인식으로 범벅된 비교, 가다머가 살아 있었더라면 눈을 흘겼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 중의 하나로 부상했기에 박 전 대통령 쪽에 끈이 닿아 있는 사람들이 혹시나 하고 ‘박정희 찬가’를 불러대는 것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의 알량한 인지상정으로 이해해준다손 치더라도, ‘반민주로 민주주의에 이바지했다’는 궤변에는 박 전 대통령 술자리에 동석했던 아가씨들까지 까르르 웃게 생겼다.
자신의 실정을 반대세력의 비협조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편들자는 게 아니다. 박 대통령 집권 당시 대통령을 비난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김 전 장관이 노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이바지했다고 주장하고 있음에 할 말을 잃는다.
 
 
박정희는 박정희, 노무현은 노무현, 비교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 덕 본 사람들은 “그래도 그 양반이 제일 훌륭하다”고 침튀기지 않겠는가? 그건 비교가 아니라 소아병적인 자기집착에 불과하다는 것을 김 전 장관은 깨닫기 바란다. <在美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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