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일제 피해자들에게 희망준 판결

강제징영 피해보상 길 터준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과제를 함께 생각할 필요

뉴민주.com | 기사입력 2012/05/28 [11:58]

동아시아 일제 피해자들에게 희망준 판결

강제징영 피해보상 길 터준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과제를 함께 생각할 필요

뉴민주.com | 입력 : 2012/05/28 [11:58]

(지난 24일 대법원은 일제 피해자들이 일본기업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에서 책임을 부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일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오랫동안 일제 피해자들을 소송을 맡아 한일 양국을 오가며 변론해온 최봉태 변호사의 기고를 통해 미쓰비시중공업을 피고로 한 일본 소송과 한국 소송의 전개 과정과 그 의미를 되새겨 보기로 한다.시민모임 카페 편집자)


광주지역 여성들이 2009년 11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당시 복장(몸뻬 바지에 멜빵차림)을 하고서 광주시내 미쓰비시 매장 앞에서 항의집회를 갖고 있다.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카페

일본에서는 1995.12.11. 한국원폭피해미쓰비시동지회 6인이 히로시마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소하고, 이어 1996.8.29. 동지회 40인이 추가 제소하였다. 위 재판은 1999.3.25. 패소하였다.


이에 그동안 돌아가신 6인을 제외하고 40인이 항소하여 2005.1.19. 히로시마고등재판소에서 402호 통달에 의해 받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가 인용되어 일본정부에 대해 원고 1인당 120만엔의 금원(위자료 100만엔, 변호사 비용 20만엔)을 지급하라고 판시하였다. 이 재판이 2007.11.1. 최고재판소에서 확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는 달리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소송은 패소판결이 확정이 되었다.

한국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2000.5.1. 부산지방법원에 6명의 피해자를 원고로 하여 제소한 지 12년만에 2012.5.24. 드디어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렇게 소송이 오래 진행이 된 것은 부산지방법원에서 한일협정 문서공개를 둘러싸고 한국의 외교통상부가 문서열람을 거부하여 소송이 중단되고, 결국 한일협정 문서공개를 구하는 별개의 행정소송을 한국행정법원에 제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재판은 2004.2.13. 서울행정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이 났고 두 당사자가 항소를 하였으나, 항소심 도중에 한국정부가 순차적 문서공개를 결단하여 항소를 취하하여 결국 2005년에 한국에서는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가 되었다. 문서 공개를 계기로 한국에서는 피해자 지원법을 만들어 부족하나마 피해자 지원을 하고 있으나, 피해자들이 원하는 정의의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재판은 유감스럽게도 하급심에서는 승소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즉 2007.2.2. 부산지방법원에서는 시효를 구실로 원고 청구가 기각이 되었다. 하지만 제1심에서 일본 재판에서 큰 벽이었던 별개 회사론도 극복하였고, 중복제소, 재판관할권 논란도 넘어섰기에 절반은 이겼다고 생각했고, 시효는 제2심에서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또한 시효 역시 제1심에서 기산점이 특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투고, 아울러 시효주장이 권리남용임을 밝히면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즉 한일협정 체결 전에는 물리적으로 제소 자체가 불가능하였고, 한일협정 체결 후에는 법리적으로 권리행사가 장애를 받고 있는데 도대체 기산점이 언제란 말인가?

그런데 2009.2.3. 제2심인 부산고등법원에서는 오히려 제1심의 성과마저 뒤집고 일본 법원 확정 판결의 기판력을 인정하여 그에 반하는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늙은몸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법정투쟁을 벌여온 피해자들로선 참으로 맥빠지는 판결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에서 일본의 판례를 뒤집는 판결이 나오지 못한 배경으로 우선 전후보상 관련 판례가 없는 관계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관할권, 이중 제소, 일제시대 불법행위의 준거법 문제, 시효, 국제사법의 적용문제, 전쟁 전 회사와 전쟁 후 회사의 법인격 동일성문제, 외국 판결의 승인논리 등 많은 난점을 가지고 있다.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한 시민이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카페

이러한 점에 대해 재판부가 일본의 재판부와 다른 판결을 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큰 짐이 되는 것도 사실일 것으로 추측되었고 부산고등법원에서는 화해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였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의 완강한 거부로 패소되어 대법원까지 가게 되었다. 한편 대법원에서는 우선 공개변론을 열어 이러한 논점에 대해 충분히 심리하고, 대법원의 판결이 가지는 무게를 잘 반영이 되게 하여야 한다고 원고들은 거듭 주장하고 하였다.

 

그리하여 한국 대법원에 참고자료를 제출하여 한국의 법원이 적어도 원고들에 대한 미쓰비시중공업의 법적 책임을 부정한 일본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한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3.1운동으로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선언하고 있는 한국 헌법에도 반하는 것으로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나머지 법리들은 1심 판결의 판단이 정당하다도 주장하였다.

 

그 결과 드디어 2012.5.24. 대법원의 승소취지의 원심파기 판결을 얻게 되었다. 우리 대법원은 강제동원에 책임있는 기업의 책임을 면책해준 일본의 판결이 우리 헌법정신에 반해 받아들일 수 없으며, 비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는 한일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되지 않고, 소멸시효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즉 일제피해자들의 권리가 적어도 한국 법원에서는 구제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 최봉태 변호사                      © 뉴민주.com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회복하는 것이고, 동아시아 일제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준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보기를 들어 중국에서 우리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빌려쓴다면 일본 전범기업들은 세계 최대시장에서 영업을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과거를 청산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우리사회에서 해방 후 60년이 넘도록 국민들이 민주화 투쟁을 하고 그 결과 피해자들의 인권에 귀를 기울일 상황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보기나름이지만 이번 승소판결은 우리 국민 모두가 투쟁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일본기업들이 이번 판결을 존중하여 하루 빨리 책임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되어 지난 2007.4. 일본 최고재판소가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의 틀안에 이루어진 전후처리의 법적 의미에 대해 판단한 것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즉,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에서는 국가간의 협정에 의해 청구권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그 의미는 피해자들의 권리가 실체법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법부에 재판을 통해 강제할 수 없다는 취지에 불과하지 권리가 실체법적으로 남아 있는 이상 책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책임을 이행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우리 대법원 판결은 위 최고재판소 판결의 이행을 독려하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사법부의 판결조차 무시하는 일본 기업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자 나아가 한일간에 법치주의를 확립한다는 차원에서도 이번 판결의 무게는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일제 피해자들은 나이가 너무 많다. 하루라도 빨리 피해자 배상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그 방법으로 2+2 방식에 의한 재단설립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한일 두 나라 정부와 두 나라 책임기업들이 재단을 만들어 위 재단에 출연한 기업들에게 책임을 면제하고 더 이상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영업을 자유롭게 하게 허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독일의 이른 바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의 한일간 본이 될 것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일제로부부터 입은 동아시아 피해자들이 보상 받는 날 진정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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