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투리 감춰버린 '화려한 휴가'

<화려한 휴가>는 호남인이 아닌 정치인을 위한 영화이다

변희재 | 기사입력 2007/08/12 [14:08]

전라도 사투리 감춰버린 '화려한 휴가'

<화려한 휴가>는 호남인이 아닌 정치인을 위한 영화이다

변희재 | 입력 : 2007/08/12 [14:08]
▲     © 뉴민주닷컴
 
만만한 개그맨 심형래


 <디워>의 논란 와중에, <화려한휴가>를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진중권 등 <디워>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디워>가 작품성이 아닌 애국주의를 동원하여 흥행을 이어가는 점을 지적했다. 그게 문제라면 역시 작품성에 비해 정치권력이 뒤를 밀어주어 관객을 동원하는 <화려한휴가>의 문제점에는 왜 침묵하느냐는 것이다. <디워>를 비판하는 논리라면 분명히 <화려한휴가>도 비판해야하는데, 영화계와 지식계 전체가 <화려한휴가>는 예찬일색으로 몰아갔다. 유일하게 하나의 비판글이 나왔으나, 그 사람은 영화인이 아닌 소설가였다. 영화인 중에서는 <화려한휴가>를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심형래 감독의 왕따라는 말이 맞는 거다. 자신들과 다른 세계에서 성장한 심형래 같은 개그맨은 두들겨패도 되지만, 충무로의 거대한 권력으로 떠오른 <화려한휴가> 제작자 유인택 같은 사람 앞에서는 입도 열지 못하는 게 영화계의 현실이 아닌가?

 블로그에 썼든 매체에 썼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심형래 감독을 인신공격 수준으로 비판한 이송희일 감독과 김조광수 대표는 같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특히 순수영화를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진정 분노해야할 대상은 <디워>가 아니라 <화려한휴가>이다. 그러나 이들이 공개적으로 <화려한휴가>를 비판하다는 건 아마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비겁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영화인 입장에서 심형래란 존재는 얼마나 만만한가. 다른 영화감독에게는 절대로 하지 못할 공격을 심형래이니까 퍼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인은 아니지만 진중권도 마찬가지이다. 진중권은 정권과 영화권력에는 침묵하고, 아무런 힘도 없는 심형래와 네티즌을 폭도로 몰아 자신을 마치 희생양으로 위장시켰다. 이는 진중권은 늘 해온 수법이고, 이번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비겁하다는 점에서는 진중권도 영화계에 전혀 뒤지않았다.

 영화권력과 정치권력은 야합한다

 <화려한휴가>를 논하기 전에 왜 영화계는 정치권력 앞에 고개를 숙일 수 없는가부터 지적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한국에는 정부가 영화계를 직접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다. 대표적인 기관인 영진위이다. 또한 문화관광부 내에서 콘텐츠진흥원 등 다양한 지원기구가 있다. 이 모든 지위는 문화관광부 장관,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다보니 현재 영화계 내의 막강한 권력기관인 영진위는 여당 원혜영 의원의 부인인 안정숙씨가 맞고 있다. 특히 한국영화의 해외진출 등에 대해서는 정부기관의 절대적 협조가 필요한 만큼, 정권과 영화계의 유착 현상은 좀처럼 해결되지 못할 전망이다.

 이런 시스템적 구조 이외에, 명계남과 문성근이라는 영화계의 거물이 노무현 정권의 실세로 움직인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명계남은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영화인들 수백명을 노무현 정권에 줄세웠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스크린쿼터를 축소해버리니, 명계남과 그의 하수인들은 오히려 영화인들의 저항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수많은 영화인들이 명계남 하나 때문에 어용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영화 <화려한휴가>는 철저히 대선기획용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제작자는 친노세력의 실세 유인태 의원의 친동생 유인택이다. 제작비는 무려 100억원이다. 영화계에서 제작비 100억원을 모을 수 있다는 건 보통 수준의 흥행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유인택은 이제껏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적이 없는 제작자이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믿고 100억을 모아주었을까?
안 봐도 뻔한 일이지만, 이 영화의 투자자들은 어차피 2007년 대선 기획용 영화이니, 범여권과, 어용진보단체들에서 단체관람을 유도해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이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면, 100억투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호남을 위한 영화라면서 호남사투리를 버렸다

 <화려한휴가>에서 주인공들의 표준말 사용은 절대 그냥 아쉽다고 넘어갈 성격의 실수가 아니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본질이다. 정동영 등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화려한휴가>를 본 뒤 “아직도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뭐가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자신들이 권력을 한번 더 잡을 때까지 이용하겠다는 것밖에 더 있나?

 권력자들과 달리, 일반 호남인들에게 광주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호남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광주항쟁 이후 영화와 드라마 주인공들로부터 호남사투리는 완전히 말살당했다. 모든 영화와 드라마에서 호남사투리를 쓰는 놈은 사기꾼에 배신자와 조폭이다. 이러한 대중문화 현상이 현실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는가? 무의식적으로 호남인들은 호남사투리를 버리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이것이 호남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게 되었다.

 제작자 유인택과 감독 김지훈은 광주의 문제가 과거가 아닌 현재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그 점이다. 호남을 위해 만들었다는 영화에서조차 호남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이 없다는 점, 그간 얼마나 호남이 억압을 당했으면 이런 일이 있겠냐는 것이다. 광주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미스할 수 있을까? 광주항쟁이 호남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에 대해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무슨 광주항쟁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섰는가?

 참고로 김지훈 감독은 전작인 <목포는 항구다>에서조차, 사기꾼은 호남사투리를 쓰고, 주인공은 표준말을 쓰는 구도를 설정했다. 아예 상습범에 가깝다. 대구 출신의 감독으로서, 단 한 번도 호남차별의식에 대해 고민한 바가 없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대중성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즉 주인공이 호남사투리를 쓰면, 타지역 사람들이 거북스러워하니, 표준말로 바꿨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타 지역 관객 한명 더 얻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영화 <친구>의 두주인공은 마음껏 영남사투리를 구사해도 전국적 흥행에 성공했다. 왜 영남사투리는 되는데 일찌감치 호남사투리는 인정못받는다는 현실에 그냥 굴복해버리냐는 것이다.

 제작자와 감독이 현재진행형인 호남차별의식에 대해 이들이 무감각했기 때문에, 영화는 국적 모를 군대와, 시민혁명군과의 총질하는 판타지영화로 전락해버렸다. 과연 이 영화를 보고 광주와 역사와 현재를 고민하는 관객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그냥 첫장면부터 두들겨 맞다가 신나게 총싸움하면서, 최루성으로 끝나버리는 판타지 이상의 영화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의 영화 <300>과도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올바른 광주영화가 아닌 정치인이 바라는 광주영화

 이들이 진정한 광주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보다는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불러들이는데 주력한 이유는 바로 정치성과 상업성의 목적 때문이다. 부리나케 <화려한휴가>를 보러다닌 범여권의 대선주자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광주항쟁은 2007년 대선을 잡기 위한 수단 이상의 것이 아니다. 이들은 광주항쟁을 다룬 좋은 영화를 원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총동원해서라도 1000만명 이상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영화를 원한다. 그렇게 해서 곳곳의 어용시민단체를 동원하여 끊임없는 대선 이벤트를 연출하고 싶어한다. <화려한휴가>는 일반국민이 아닌 바로 이러한 정치인들을 위한 영화가 되어버린 셈이다.

 문제는 영화계와 호남이다. 이런 수준의 정치적 상업적 술수가 난무하는 어용 영화에 대해서 영화계나 호남의 지식인들 누구 하나도 이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가? 영화계와 호남 모두 권력에 굴복했단 말인가?

 호남의 일반 서민 입장에서 “전두환 정권이 호남인들을 잔인하게 쏴죽였다”라고 영화에서 한번 더 외치는 게 뭐가 중요할까? 호남사투리를 감추려고 피눈물나는 노력을 해왔던 호남인들, 그 사람들의 평생의 자존심을 위해, 주인공들이 당당하게 호남사투리를 써주는 것, 그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 아닌가? 호남을 위해 만들었다는 영화에서조차 주인공이 호남사투리를 버리면서, 탈호남을 추구하는 것, 이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마치 민주당의 호남이미지로는 전국정당이 될 수 없으니, 열린우리당을 창당해버린 권력의 억압과 뭐가 다른가? 주인공이 호남사투리 쓰면 전국적 영화가 안 되니, 호남사투리를 버리겠다는 영화를, 호남인들이 앞다투어 동원해서 봐줘야할 이유가 뭐냐는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호남에서 이러한 의견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영화계도 마찬가지이다. 호남사투리 문제는 상징적인 부분이지만, 영화 한 장면 한 장면 따지고 들어가면, 완성도는 크게 떨어진다. 신세대 배우 이준기를 쓰기 위해, 고등학생이라면서 머리도 깎지 않고 출연시키는 건, 이건 그야말로 영화와 광주에 대한 모독이다. 또한 광주항쟁 장면 역시 <모래시계>나 <제5공화국>에 비해 뭐가 그리 달라졌는가? 영화계에서 이 영화에 대해서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언제부터 영화계가 어용화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정권 끝나면 청문회라도 열어 확인을 해봐야할 사안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광주항쟁 등 우리가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이유는, 아무리 거대한 권력이라도 역사적 진실마저 덮을 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지금 <화려한휴가>의 모든 심각한 문제점을 권력이 덮고 있다. 정말로 <화려한휴가>의 제작진들은 역사를 다루면서 역사의 두려움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란 말인가?

 <변희재 / 빅뉴스 http://big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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