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명박과 노무현, 경상도의 비극

영남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이 도를 넘었다

공희준 | 기사입력 2008/06/07 [14:23]

2008년 이명박과 노무현, 경상도의 비극

영남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이 도를 넘었다

공희준 | 입력 : 2008/06/07 [14:23]
"일본해군은 처음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아주 드문 경우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언제나 그 방식이 통한다고 믿었다. 또 계획이 처음에 너무 크게 성공하는 바람에 장기적인 중심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무턱대고 확장했으며, 그나마 수립한 전략도 수시로 바뀌어 목적을 상실해버렸다.
그리고 정확한 근거에 따라 판단을 내리기보다 자신의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믿었으며, 실수를 인정할 줄 모르고 감추기에 급급했다.
 
마지막으로 연공서열과 자기 믿음을 중시해 합리적 의견을 내는 부하를 무시하고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중책을 맡겼다. 즉 가장 중요한 정책에서 그들은 이미 패전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남과 싸우려고 한 것이므로 지는 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람기획에서 출판한 ‘연합함대 그 출범에서 침몰까지’라는 책의 머리말에서 인용한 글이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이르러 연합함대는 연료가 없는 탓에 하릴없이 항구에서 빈둥거려야 하는 수십 만 톤의 고철덩어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연합함대의 영광을 위해 410척의 함선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2만 6,000기의 비행기가 추락했으며, 40만 9,0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우리 민족으로서는 쾌재를 부를 노릇이다. 더불어 그 많은 물적, 인적 희생을 치르고서도 승리하지 못한 일본이 참 멍청하게도 느껴진다.
 
위에 인용한 부분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떠오르지 않는가?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처음에 큰 성공을 거둔 그 분들. 그것이 아주 드문 경우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언제나 그 방식이 통한다고 믿었던 그 분들. 처음에 너무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바람에 장기적 발전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무턱대고 확장하다가 그나마 있던 본전마저 까먹었던 그 분들. 자신의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믿고서는 실수를 인정할 줄 모르고 오류를 숨기기에 급급했던 그 분들.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본인들과 가까운 사람에게 중책을 맡겼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폭소가 터지고 말았다. 코드인사의 특허와, ‘강부자’ ‘고소영’ 인맥의 저작권은 아무래도 일본 연합함대의 수뇌부에게 있겠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강점이자 장점으로 자부해왔던 부분이 약점으로 변화하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몰락이 시작된다. 이는 개인에게나 집단에게나 두루 해당하는 사항이다. 이명박 정권의 위기는 청계광장에서 촛불 흔드는 소위 좌파 소녀들의 준동 때문이 아니다. 다른 건 모두 몰라도 경제만은 반드시 일으키겠다는 이명박의 약속이 부도수표로 판명될 확률이 커지는 순간 걷잡을 수가 없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국민원로야 차가 없으므로 체감은 못하지만 경유값이 정말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며칠째 시동을 걸 기미가 없이 주차장이 잔뜩 늘어서 있는 차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명박이 경제로 흥했다가 경제로 망하는 인간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연합함대의 존재의 이유는 승리에 있었다. 이기지 못하는 연합함대는 더는 존재할 가치가 없었다. 이명박의 존재의 이유는 경제회생에 있다.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이명박은 더는 청와대에 있을 이유가 없다. 이명박 집권의 1등 공신 노무현도 이와 같은 원칙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무현의 존재의 이유는 지역주의 극복에 있었다. 노무현 정권이 스스로를 부산정권으로 규정함으로써 노무현은 진보개혁진영의 호적에서 자연스럽게 지워졌다.
 
50년 영남정권의 존재의 이유는 능력이고 유능이었다. 우리네 일상생활을 구체적 사례로 들어보자. 경상도 출신들은 흔히 매너가 더럽고 에티켓이 없다고 이야기된다. 그러한 결격사항들은 요 한마디로 깨끗이 상쇄되기 마련이다. “갸 능력 있다 아이가!” 이명박도 마찬가지 경우다. 그는 원천적으로 대통령이 돼서도, 될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경제를 살릴 능력이 있다는 걸로 허다한 윤리적 하자들을 덮어버렸다. 노무현에 관한 수많은 부정적 평가들은 일찌감치 알려져 있었다. 우리들은 그가 지역대립구도를 타파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에 질끈 눈을 감고서 모른 체했다.
 
보수우파는 이명박의 능력에 기대를 걸었고, 진보좌파는 노무현의 능력에 믿음을 보냈다. 결과는? 다 아는 사실이다. 그들은 철저히 무능했다. 국민들에게 능력, 또는 실력으로 여겨졌던 대목은 실은 얕은 수완 내지 얄팍한 처세술에 불과했다.
 
“경상도 사람은 유능하다!” 이 신화는 IMF 관리체제를 초래한 김영삼으로 말미암아 잠깐 흔들리는 듯했다. 조중동 등이 앞장서서 YS를 영남의 정통계보에서 가까스로 밀어냈다. 한데 YS 못지않게 무능한 노무현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노무현을 김대중과 같은 묶음으로 엮어서 얼렁뚱땅 땡처리할 수가 있었다. 허나 이명박은 저들 처지에서 도저히 어떻게 수습할 도리가 없다. 이명박 정권은 누가 뭐래도 박정희부터 이어지는 전통의 영남정권이었다. 즉 김영삼과 노무현과 이명박의 삼세번을 통해 국민들은 영남의 무능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산물임을 생생히 목격했던 것이다.
 
저들은 노무현과 이명박이 가끔씩 표출하는 갈등관계를 이용해 영남막부라는 공통적 뿌리를 은혜하려 시도한다. 참으로 교활한 수작이다. 일본해군과 일본육군은 개와 원숭이처럼 서로 으르렁대기 일쑤였다. 오죽 사이가 좋지 않았으면 해군한테 손 벌리기 싫다며 육군에서 항공모함까지 직접 건조했겠는가? 그렇지만 잊지 말자. 육군이든 해군이든 대동아 공영권이란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고자 광분했음을. 노무현 정권도 이명박 정권도 영남패권주의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미쳐 날뛰기는 피차일반이듯이. 달리 노명박이겠는가? 대동아 공영권을 한국의 실정에 알맞게끔 쳐내고 잘라내 요리한 것이 영남패권주의다. 그것은 지독한 선민의식서 비롯된 일종의 소군국주의(小軍國主義)이자 유사 인종주의(Racism)다.
 
역시나 국민원로의 예상이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내가 예견했지 않았는가? 영남친노세력은 틀림없이 정치적 재기를 모색할 거라고. 노무현이 무슨 ‘민주 2.0’인가하는 인터넷 사이트인가를 새로 만든단다. 재단도 출범시킨다는 소식이다. 민주 2.0은 개뿔. 그냥 적나라하게 ‘상도 2.0’이라고 명명해라. 당신들 정체 탄로 난 지 오래니까. 영남친노들이 인터넷 포털사이들마다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퍼뜨린 거짓말을 조금만 각색하면 영남막부 지배체제의 최종 버전 겸 최신 업그레이드판인 노명박 정권의 본질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노무현은 호남과 싸우고, 이명박은 강북과 싸운다.”
 
연합함대의 상징은 세계 최대의 전함 야마토였다. 경상도 노빠들 또한 어렸을 적에 일본 애니메이션 ‘날으는 전함 V호’를 감명 깊게 본 눈치다. 오키나와 근해에서 무수한 직격탄을 얻어맞은 끝에 선체가 두 동강 나 침몰한 거함 야마토가 우주전함으로 부활한다는 시시껄렁한 공상만화를. 솔직히 재미는 있더라. 전함 V호를 요즘 유행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면 ‘야마토 2.0’쯤 되겠다. 봉하마을에서 야심차게 제작하고 있는 파동포는 어디를 겨냥해 발사될까? 어디기는 어디겠는가?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차례로 표적이 되겠지. 동교동도 빼면 안 될 테고. 요새 노빠들과 어울려 노느라 정신없는 진중권도 결국은 상도 2.0에 탑재된 파동포 한 방 뒤통수에 맞을 터. 우주전함 야마토의 파동포는 지구를 구했지만 봉하마을의 파동포는 이명박을 구원하려 붐을 뿜을 게다.
 
그러나 이제는 늦었다. 국민은 영남막부가 난사하는 파동포에 더 이상 겁먹지 않는다. “경상도 사람은 유능하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경상도 사람은 특별히 유능하지도 무능하지도 않다. 아니, 노무현과 이명박의 빈볼을 연타석으로 경험한 국민들 입장에서는 경상도 사람, 특히나 경상도 정치인들은 어이가 없을 만큼 무능하다. 게다가 파렴치하기까지 하다. 지금이야 이명박 혼자 매를 벌고 있지만 미국산 쇠고기가 몰고 온 광우병 공포는 영남지방에 터를 잡았거나, 지지기반을 둔 정치인 및 정치집단에 대한 국민들의 전면적 불신과 비토를 낳을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2008년은 경상도한테 비극의 해인 것이다. 경상도 정권은 이명박 정권이 마지막이어야 함을 대한민국 유권자들에게 처절히 깨우쳐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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