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생각하는 국민소통은 댓글?

<채수경 칼럼> 한심한 '떠버리'들의 소통

채수경 | 기사입력 2009/01/28 [22:17]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국민소통은 댓글?

<채수경 칼럼> 한심한 '떠버리'들의 소통

채수경 | 입력 : 2009/01/28 [22:17]
시인 신달자는 “삶을 포기할까 고민했을 만큼 어려웠던 시절 세상을 향해 원망만 하거나 경멸하기만 했다면 나는 더 지치고 쓰러졌을지 모른다. 그 때 나는 시 쓰기를 통해 검은 고통의 내 삶을 예쁘게 껴안았었다”고 고백했었고 신문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은 “밥을 벌어먹는 노동이기 때문에 그건 끔찍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었다.
또 인터넷에 정부 경제정책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쇠고랑을 찬 자칭 미네르바 박대성은 “아무런 이득을 바라지 않고 주관적 소신을 갖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글을 썼다”고 주장했었다. 실제로 미네르바가 글을 써서 얻은 금전적·경제적 이득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나 신달자나 김훈 말고도 직업적으로 글을 써온 사람들은 “미네르바에게 그것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히죽 웃을 것이다. 그것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뭔가?
 
글로 쓰인 것들을 총칭하는 영어 ‘literature’의 뿌리는 쓰기, 문법, 배우기를 뜻하는 라틴어 ‘literatura’다. 쓰기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므로 ‘소통’, 문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해놓은 일정한 규칙 즉 공유하는 가치관, 뭔가 배운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것, 그걸 싸잡아 한자로는 ‘문화(文化)’라고 한다. 문(文)은 육체 안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던 시절 사람이 죽었을 때 가슴에 ‘x’ 따위의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게 함으로써 흘러나오는 피와 함께 영혼을 몸 밖으로 해방시켜주던 의식에서 나온 글자로 원래 의미는 ‘무늬’, 그 무늬를 글로 기록한 게 ‘文化’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영혼과 영혼의 소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민주주의가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를 신성시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freedom of speech’를 ‘freedom of expression’이라고도 하는데 ‘expression’의 뿌리는 ‘밖으로’를 뜻하는 접두사 ‘ex-’에 ‘찍어내다’라는 의미의 ‘primere’가 붙은 라틴어 ‘exprimere’로서 ‘(마음) 속의 것을 밖으로 드러내다’라는 의미, 한자 문(文)과도 딱 맞아 떨어진다. 실업자 청년 박대성이 경제학을 독학으로 깨우쳐가며 인터넷 토론방에 글을 올린 것도 소외되어 고독한 가운데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맞다. 아무리 글을 써도 누군가 읽어주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 이명박 정권이 사이버 모욕죄·인터넷 실명제·인터넷 감청 등 소위 ‘MB표 사이버 악법 3종세트’를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려는 시인과 소설가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도 ‘글쓰기의 본질’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7년 박범신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연재했던 ‘촐라체’가 화제를 불러일으킨 데 이어 지난해에는 황석영이 역시 네이버에 연재한 ‘개밥바라기별’에 180만명이나 방문하면서 오프라인에서도 대박을 터뜨렸고 지난해 말부터는 모 일간지 조사 결과 ‘네티즌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1위에 올랐던 공지영이 포털 사이트 다음에 ‘도가니’를 연재해오고 있다.
연재기간 중 하루에도 몇 번씩 블로그에 들러 댓글을 달았다는 황석영이 “소설 쓰는 시간보다 댓글 다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고 엄살(?)을 떨었듯이 자신의 미니 웹사이트나 블로그를 문학사랑방으로 예쁘게 꾸며놓고 매일 독자들과 소통하는 시인들 또한 부지기수다.
 
한나라당 디지털정당위원회 산하 국민소통위원회가 19세 이상의 자원봉사 누리꾼 100명을 제1기 국민소통위원으로 뽑은 가운데 김성훈 디지털정당위원장이 “내달부터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빅 마우스(big mouth), 당 전문위원 등으로 구성된 미들 마우스(middle mouth)가 토론 사이트에 최근의 현안과 관련된 글을 올리면 국민소통위원들이 댓글을 달고 누리꾼들과 토론을 하게 된다”고 밝혀 기축년 새해 벽두부터 헛구역질이 나오게 한다.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떠들어대는 자기당 국회의원들을 스스로 ‘떠버리(big mouth)’라고 부르는 것도 블랙코미디지만, 명색이 집권당에서 ‘국민소통위원’을 모집하여 댓글족으로나 부려먹겠다는 발상을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음에 한심하기 짝이 없고, 그런 것을 소통이라고 착각하고 있음에 죽은 사람 영혼을 해방시켜주겠답시고 가슴팍에 ‘x’표 칼집을 내던 원시인들이 깔깔 웃게 생겼다. 소통이 뭔지, 문화라는 게 어떤 건지, 한 번도 마음속의 것을 진솔하게 밖으로 꺼내본 적이 없이 되는 대로 떠들어대는 떠버리들이 실업자 청년 미네르바에게 혼난 후 얼이 빠진 나머지 꼴값을 하는 것 같다.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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