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헙법 만들고 '법대로' 외칠 수 있나?

<채수경 칼럼> '법률적 불법'

채수경 | 기사입력 2009/01/29 [18:50]

유신헙법 만들고 '법대로' 외칠 수 있나?

<채수경 칼럼> '법률적 불법'

채수경 | 입력 : 2009/01/29 [18:50]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법이 지배한다(Non sub homine, sed sub lege)”는 라틴어 법언(法諺)을 들먹인다. 한술 더 떠 “법은 혹독하지만 그래도 법(Dura lex, sed lex)”이라는 법언을 ‘악법도 법’이라고 살짝 비틀어 소크라테스 또한 탈옥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순순히 독배를 들었다는 이야기까지 지어내 떠들어댄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이 악법으로 손해를 보게 되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입에 거품을 문다는 것을 총칼로 법을 까부수고 정권을 잡은 후 자신에게 유리한 ‘법대로’를 외치면서 국민을 억압했던 독재자 박정희나 전두환 또한 히죽 웃으며 고개 끄덕거릴 것으로 믿는다.
 
한국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중의 하나가 법치주의다. 법은 귀한 사람들에게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나무의) 굽음에 따라 휘어지지 않는다(法不阿貴 繩不撓曲)고 했다. 단언컨대 법치주의는 ‘다스리는 자’를 견제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지 ‘다스림을 받는 자’를 억압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잉글랜드의 법과 관습에 대하여’라는 저술로 영국법의 기초를 닦았던 13세기 영국의 법학자 H. 브랙턴이 “국왕도 역시 신과 법 밑에 있다”고 주장했던 것도 국왕의 자의적인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고 시민혁명기 대부분의 법이 국왕이나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서 제정됐다는 것을 민주주의의 역사를 한 번이라도 자세히 더듬어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도 법을 집행하는 권력이 다스림을 받는 자들에게 법치주의를 강요하면 ‘합법적 독재’로 전락하는 바, 법을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하는 데 써먹은 히틀러의 나치독일이 ‘법률적 불법(Gesetzliches Unrecht)’이라는 모순에 빠져버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는 것을 까먹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권이 다수결을 빙자하여 입맛에 맞는 법안들을 억지로 밀어붙이다가 민주당 의원들이 쇠망치를 들고 덤벼드는 등 강력한 반발에 봉착하자 한나라당이 ‘국회폭력방지법’을 추진 중인 가운데 28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서 박희태 대표는 “국회폭력은 만성적이 됐는데 그동안 엄하게 처벌했더라면 아무도 폭력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고 홍준표 원내대표 또한 “이제 국회에서는 폭력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폭력을 행사하는 의원이나 정당들은 더 이상 국회에서 존립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박 대표는 공안 검사 출신이고 홍 원내대표는 특수부 검사 출신, 둘 다 법을 집행만 하다가 권력의 양지만을 걸어와서 그런지 ‘법대로’를 외치고 있지만, 이전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자신들이 저지른 국회 내 폭력이나 농성에 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어 가소롭기 짝이 없거니와, 정권 잡았답시고 입맛에 맞는 법 만들어놓고 ‘법대로’를 외치는 꼴을 보면 유신헌법 만들어놓고 ‘법대로’ 윽박지르면서 종신집권을 꿈꾸던 박정희·전두환 독재의 똘마니들을 보는 듯하다. 국회 다수당이 된 기념(?)으로 “앞으로 대한민국 국회는 한나라당 마음대로 한다”는 법은 왜 안 만드나?
 
정치하자는 건가? 엉터리 법 만들어놓고 법조문 따지는 놀이 하자는 건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면서 ‘법치주의’ 들먹이지 말라. 정의와 상식을 무시한 악법은 법이 아니다. 지금의 법 법(法)은 물 수(水)와 갈 거(去)로 구성돼 있지만 원래는 정의의 상징인 해태 치(廌)까지 합해져 있던 것으로서, 물이 흘러가듯 공평하고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정한 것은 뿔로 받아버리는 게 법, 다수당이라고 해서 민주주의의 정의에 위배되는 법을 만들어 국민들을 억압하려고 덤벼드는 한나라당은 법치주의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하기 바란다. 먼 훗날 역사에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다수를 빙자하여 ‘법률적 불법’을 자행했었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면.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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