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재보선의 유시민, 4.25 재보선의 김홍업

군소 민주당 역사의 시작과 끝에 걸린 두 전략공천

김만흠 교수 | 기사입력 2007/04/16 [11:44]

4.24 재보선의 유시민, 4.25 재보선의 김홍업

군소 민주당 역사의 시작과 끝에 걸린 두 전략공천

김만흠 교수 | 입력 : 2007/04/16 [11:44]
 
▲ 유시민-노무현, 김홍업-김대중
2003년의 4.24 재보선은 민주당이 추락하는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권력을 배경으로 유시민에 대한 어거지 연합공천이 있었다. 이 선거를 통해 정치무대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유시민은 노무현 정권의 파란을 만드는데 중요한 몫을 하게 된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7년 4월 25일, 4.25 재보선이 치러진다.

4.24, 4.25 희한하게 하루 차이다. 이번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어거지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하면서 민주당이 어렵게 되고 있다.

4.24 재보선은 노무현 정부 집권 2개월 정도가 된 2003년 4월 24일에 치러졌다. 지역구 국회의원 3명, 그리고 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29명을 뽑는 선거였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거론되었던 민주당의 개혁 또는 재창당 논의가 대통령 당선 이후 다시 본격화 되면서 노 정권의 신주류와 민주당의 주류 사이에 갈등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과도기 상황에서 치르게 되는 4.24 재보선에서 여당인 민주당과 노대통령을 지지했던 개혁국민당과의 연합공천 논란이 쟁점이 되었다. 개혁당과의 연합공천 논란은 사실상 덕양갑에 출마한 유시민 후보의 문제였다. 유시민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원을 배경으로 한 김원기, 정동영, 이상수 의원 등의 영향력으로 연합공천 후보가 되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민주당 해체를 주장했고, 민주당과 같은 정당 구조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에 절대 연합공천은 없다(2003년 1월 3일 오마이뉴스 인터뷰 등)고 했던 유시민이 연합공천 후보가 되어 당선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유시민은 스스로 정당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던 상향식 공천 후보자를 제치고 낙하산 공천을 받았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개혁당 소속의 유 후보는 민주당의 안형호 후보에 뒤졌다. 그럼에도 후보단일화를 하면 안 후보보다 유 후보가 경쟁력이 높다는 억지 논리를 앞세운 이상수 사무총장 등의 주장이 관철되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 민주당 내부에서는 민주당을 폄하했던 후보를 민주당의 연합공천 후보로 할 수 없으며, 더구나 상향식 후보로 선출되고 여론조사에서도 앞서 있는 후보를 대체하고 낙하산 공천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컸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은 신주류의 주장이 관철됐다. 신주류가 점차 전면에 등장하고 민주당의 구세력이 소외되는 국면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4.24 재보선 과정과 결과는 민주당의 왜소화가 시작되는 전환점이었다.

또한 노대통령 못지 않게 독선적 언술로 정치적 파란을 만들었던 유시민이 본격적으로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계기였다. 연합공천으로 개혁당 유시민 후보에게 덕양갑 후보를 넘겨준 민주당은 후보자를 낸 양천을과 의정부의 선거구에서는 제1야당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했다. 노 정권의 신주류는 이 선거 결과를 근거로 삼아 민주당 해체를 더욱 거세게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민주당을 해체 과정에 있는 정당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던 신주류의 공격에 있었다. 금방 없어질 정당의 후보에 대한 지지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4.24 재보선의 연합공천으로 정치무대에 등장한 유시민은 노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를 자임하며 계속 주목받는다. 이라크 파병, 대북송금 특검, 탄핵, 당정갈등, 대연정 등 노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제기될 때마다 전면에서 대통령을 옹호했다. 대통령의 무리수가 등장할 때마다 유시민의 무리수도 뒤따랐다.

그런 만큼 노대통령과 비슷하게 소수의 열정적인 지지 그룹은 있지만 국민 일반의 유시민에 대한 반감도 매우 컸다. 심지어 같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다수가 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됐을 때 당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이 책의 「노무현 대통령, 유시민 의원 정말 대단하다」 참조).

2007년 4월, 1년 이상의 임기를 마친 시점에서 그가 주도한 개정 국민연금법이 국회에서 부결된 가운데, 그의 장관직 진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전략공천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상향식 공천이나 객관적 원칙에 따른 공천 심사가 보편화되면서, 이와 다른 예외적인 공천 방식을 지칭하고 있다. 당의 목적을 위해 외부 인사를 영입해 공천하는 경우에 주로 적용한다. 개인의 자질도 좋고 당선 가능성도 높지만, 당내 기반이나 지역구 기반이 취약해 후보 경선 과정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예외적인 방식으로 공천하는 것이다.

물론 영입인사에 대한 예우 차원인 경우도 있고, 시간이 급박해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떤 경우에 전략공천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운 경우들도 많을 것이다. 따라서 전략공천이 당내 권력자에 의해 자의적으로 활용되는 구 시대적인 공천방식이 되버릴 수도 있다.

이번 민주당의 김홍업 공천도 전략공천이라고 한다. 지역구의 상향식 공천이나 당내 경선을 거치지 않고 중앙당의 실세들이 그냥 공천을 결정한 것이다. 전국적인 여론뿐 아니라 지역구에서도 반대하는 여론이 큰데도 그냥 밀어부친 것이다. 더구나 뇌물죄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고 최근에야 사면된 그를 공천했다. 유일한 공천 배경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아버지의 이름’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전략인가가 설득력이 없다.

이를 공천한 민주당도 문제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당사자가 더 문제이다. 무슨 밀알이 되겠다며 마치 희생하기 위해 나온 것처럼 말하는 김홍업 자신은 물론, “자신 때문에 희생해 온 아들이 명예회복 하겠다는 데 말릴 수 없었다”고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 또한 스스로의 정치역정을 훼손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정치 민주화의 핵심 동력이었던 DJ와 호남의 연계마저도 DJ의 시대착오적인 섭정정치로 훼손받을 여지가 없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 인사들의 반대 성명도 있었다. 지역 시민단체에서는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한다. 김홍업의 명예회복이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예까지 실추시키는 비민주적 폭력이라면서 수백명의 민주당 당원들이 탈당하고 있다. 선거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째 아들 역시 아버지의 이름으로 3선 의원을 역임했다. 불명예 퇴진했다. 이번에는 둘째 아들이 1년짜리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정계진출을 시도하면서 지역구와 호남을 어렵게 하고 있다.

통합 신당이 추진되고 있다. 민주당은 그 통합 신당의 중요한 축이 될 모양이다. 4.25 재보선은 지난 4년 동안 군소정당으로 견뎌온 민주당 이름의 마지막 선거일지 모른다. 2003년 4.24 재보선의 유시민과 2007년 4.25 재보선의 김홍업, 군소 민주당 역사의 시작과 끝에 걸려 있는 상처의 기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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