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이 노 대통령 말 문열어주다

아프간 피랍 사건 이후, 국내 정치 영향력 발휘할 절호의 기회

변희재 | 기사입력 2007/08/09 [01:29]

정상회담이 노 대통령 말 문열어주다

아프간 피랍 사건 이후, 국내 정치 영향력 발휘할 절호의 기회

변희재 | 입력 : 2007/08/09 [01:29]

국내정치와 대선에 적극 개입하겠다던 노대통령이 아프간 피랍 사건으로 약 한 달 간 말문이 막혀있었다. 자국민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섣불리 신당창당이나 합당, 그리고 대선에 대해 입을 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노대통령의 입을 열어주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노대통령은 오늘 “남북정상회담을 정례화하겠다”며 포문을 열었다. 물론 아프간 피랍 사건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언급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여론의 주목은 아프간이 아니라 북한으로 넘어갔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정치적이냐 아니냐는 논쟁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교과서적으로 보더라도, 집권자가 올바른 정책을 펴서,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면 당연히 지지세를 모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즉 남북정상회담이 잘 되면, 노대통령의 국내 정치 영향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반대로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급속히 레임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당장 8월 14일 예정되어있는 열린우리당과 민주신당의 합당에서, 친노세력의 입김이 세질 전망이다.

 

문제는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히 우선 순위 관계는 있는 것이다. 특히 대외문제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면밀히 북한 내부 상황과, 국제정세를 파악해서, “지금이라면 반드시 남북정상회담을 해야한다”라는 확신을 가졌을 때, 시작하는 것과, “대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일단 하고 보자”라는 자세는 확연히 다르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의 진행과정을 볼 때는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국정원장이 단지 두 번의 방북하여 1주일만에 합의를 해온 것도 그렇고, 최소한의 큰 의제조차 아직 가닥이 잡히지 않은 것도 그렇다. 또한 북핵 문제를 풀 로드맵을 만든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불능화와 핵프로그램 신고가 합의되지 않는 등, 여전히 안개정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국제 정세도 그렇다.

 

이번의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다룰 문제는 북핵이다. 그런데 이 북핵 문제는 이미 남북 간의 영역을 넘어섰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공조 없이는 풀어낼 수가 없다. 노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김정일의 전향적인 자세를 끌어낸다 하더라도, 6자회담에서 이것이 어떻게 다시 엎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남북정상회담 개최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 동기의 순수성을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물론, 구체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양국의 정상 간에 허심탄회한 인간관계라도 형성이 된다면, 차후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노대통령이 임기가 6개월 정도 남은 대통령이 아니던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 스케줄을 잡아놓았다가, 자신의 임기가 얼만 남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포기한 사례가 있다.

상대방, 즉 영원히 북한을 지배하리라 믿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 입장에서는 조만간 직에서 물러날 노대통령과 합의를 해봐야, 이것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쯤은 미리 감안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6.15 공동선언 합의조차 북측은 대부분 지키지 않고 있다.

 

남북한의 미묘한 내부사정 때문에, 실제로 6자회담의 방향을 바꿀 만한 합의안이 나오지 않더라도, 일정 정도의 정치적 이벤트까지는 가능할 정도의 안들은 준비하고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노무현 정권의 재집권에 조금 도움이 된다는 것 이외에, 대한민국 전체로 봐서 얼마나 국익에 큰 도움이 되겠는가.

 

또한 대선이 코 앞에 둔 상황에서, 보수진영이 납북자, 탈북자, 전시 행방불명자, 대북 지원금 사용의 투명성 등을 의제로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게 되면, 남남갈등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위험도 있다.

 

국제문제를 해결하는 정도로 볼 때, 6자회담이 보다 진척이 되어야 하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 충분히 합의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을 해야지,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 노대통령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리고 이를 김정일 위원장이 들어주었다.

 

만약 이것이 국내 정치용이라면, 초기에는 국면전환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에, 앞으로 아슬아슬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북한이 8월 28일까지 어떻게 태도를 변경할지도 모른다.

 

다만 노대통령은 일개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국가 원수이므로, 동기와 과정이 어떻더라도, 최소한의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정치권에서는 초당적 협력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회담이 실패하더라도 수습할 여력을 갖출 수 있다. <변희재 빅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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