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타오를수록 국회를 열고 해답을 찾아야

<이인제 의원 의정칼럼> 지도력의 붕괴

뉴민주닷컴 | 기사입력 2008/06/17 [09:45]

촛불이 타오를수록 국회를 열고 해답을 찾아야

<이인제 의원 의정칼럼> 지도력의 붕괴

뉴민주닷컴 | 입력 : 2008/06/17 [09:45]
▲  이인제 의원   © 뉴민주닷컴
재앙은 닥쳐오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재앙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을 개척할 수 있는 지도력이다. 중국은 미증유의 지진참사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오히려 중국 인민들을 단결시키는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미얀마는 대형 태풍으로 빚어진 재앙을 숨기며 국력을 피폐하게 만드는 지도력의 빈곤을 보여준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열쇠는 주어진 여건이 아니라 바로 지도력이다. 지도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로 무장하고 튼튼한 구조와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진화시키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 지도력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관점에 설 때에만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치, 경제, 사회에서 과거 경험해보지 못한 유형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촛불을 들고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다. 오래 전부터 낡은 진보운동을 이끌어 온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목적은 무엇일까. 어린 자녀를 무등 태우고 소풍을 즐기듯 참여한 사람들의 미소 속에 담겨있는 소망은 무엇일까.
 
정부가 불문곡직하고 쇠고기 협상의 무효를 선언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면 촛불이 사라질까. 정부가 촛불의 위세에 굴복하여 재협상을 선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재협상을 수용해야 할 상대는 미국이다. 미국이 촛불에 놀라 굴복할 가능성은 제로이다. 재협상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불똥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게 될 것이다. 무역보복이 뒤따르고 한미 FTA 비준이 물 건너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마늘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의 마늘수입을 일시 중단시킨 일을 기억할 것이다. WTO 체제에서 허용된 긴급수입제한조치였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한국으로부터의 휴대전화수입을 중단시켜버렸다.  정부는 결국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며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 정부의 굴복을 비난하는 소리를 나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명박 정부가 쇠고기 협상을 졸속으로 잘못 처리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나는 지난 대선 때 버시바우 대사와 이 문제를 논의한 일이 있다.   광우병 감염 위험을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버시바우 대사에게 관계국들이 참여하는 다자간 논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자 대사는 한국이 일본을 굳이 따라갈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다소 엉뚱한 말을 하였다. 미국의 속셈은 이번에 한국의 쇠고기 수입제한장벽을 허물고 그 여세로 일본, 대만 등이 같은 이유로 설치한 비관세장벽을 허물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지나간 일이다. 다시 되돌릴 수가 없다. 선의로 생각하면 정부도 바보가 아닌 이상 미국의 속셈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힘겹게 유지하고 있던 장벽을 허물지 않았겠는가. 한미관계의 강화, FTA 조기 비준을 통한 시장 확대 등을 통해 당면한 경기침체에 숨통을 열고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욕이 앞섰을 것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런데 쇠고기 협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비난이 일자 정부가 들고 나온 방패는 광우병 감염위험이 없다는 과학적 주장뿐이었다. 이것이 어디 과학의 문제일 것인가. 왜 우리가 앞장서서 장벽을 허물었느냐는 자존심의 문제이고 개방이 몰고 올 두려움의 문제이다. 정부가 문제의 핵심을 피하지 않고 정면 대응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정직하게 협상의 과정을 말했어야 한다. 숨길 것이 무엇이 있는가. 숨길 수도 없는 일이다.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 서둘렀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일이 왜 어려운가.  그것을 모르는 국민이 어디에 있는가. 쇠고기 장벽을 허문 정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목숨을 걸고 말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촛불이 거리를 점령하는 동안 진정한 위기가 폭발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바로 유가 폭등으로 인한 산업의 마비였다. 작년 초 30달러, 작년 이맘 때 65달러 하던 유가가 지금 135달러로 치솟고 장차 230달러까지 폭등한다는 공포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충격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당장 기름 값이 오르고 그 가격으로 수지를 맞출 수 없는 화물차들이 연대파업을 예고하는데도 정부는 아무 대응을 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파업이 폭발하고 말았다. 물류가 마비되면 생산도 소비도 따라 마비되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앞으로 물류를 정상화하는 일도 어려워졌고 그 사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계산이 불가능할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이 왜 일어나는가. 
유가 폭등은 경제의 대지진에 해당한다. 진앙에 가까울수록, 부실한 건물일수록 피해는 커지게 마련이다. 우리 경제는 100% 수입 원유에 의존하고 있으니 진앙의 한 가운데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으므로 경쟁력 면에서 가장 부실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야말로 우리 경제는 생존의 시험대 위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엄중한 위기도 대처능력이 있으면 기회로 만들 수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연대파업으로 인한 물류대란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장차 더 큰 위기를 어찌 감당할 것인지 두려울 뿐이다.
 
지도력의 원천은 정직, 용기 그리고 희생이다. 나폴레옹은 전쟁에 나설 때마다 전선의 맨 앞에 서서 병사들을 지휘하였다. 죽음은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다. 천년의 로마제국도 황제가 전선에 나서는 전반기에는 흥했고, 황제가 로마에 머물며 전쟁을 지휘했던 후반기에는 쇠했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일은 지도력의 붕괴이다. 대통령이 장막 뒤에 숨으려 해서는 안 된다. 정직한 자세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용기 있게 나서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거기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국민을 설득하면 된다.
박정희가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추진할 때 국민의 저항은 지금의 촛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정면으로 돌파하였다. 그 때 박정희가 굴복했다면 과연 우리나라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기적적인 산업화는 발목이 잡혔을지 모를 일이다.
 
국민을 대표하여 국정을 이끌겠다고 다짐한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등원을 하지 않고 있다. 등원은 국민에 대한 의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등원이 이명박 정부를 도와주는 일이 될 수도 없다. 촛불을 든 국민들 가운데 등원을 거부하라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회를 닫고 촛불에 매달려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촛불이 타오를수록 국회를 열고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루 빨리 국회를 열어야 한다. 
 
더 이상 국가 지도력의 붕괴를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명박 개인이 아니라 헌법상의 존재이다. 그 지도력이 붕괴된다면 그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불행으로 직결될 것이다.
국회의 공백을 끝내야 한다. 의원 개개인의 직무유기에 그치지 않고 국가 혼란을 부채질하게 된다. 누가 그 결과를 책임질 것인가.
 
                                     2008.     6.     16
                                         이     인     제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추천칼럼 많이 본 기사